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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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금), D6묵상, 시편23편

  • 최고관리자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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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해]] 

시편 22편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한 특별한 예언이었다면, 23~24편은 자신이 신뢰하기로 선택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의 삶에 보장된 승리가 무엇인지를 영광스럽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 승리는 가볍고 천박하게 소리지르고 환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것에도 동요하지 않는, 고요한 침묵이 있는 승리의 누림입니다. 내가 이룬 것이 없이 받은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사해서, 감당할 길 없어서 그 영광스런 승리 앞에서 승리자는 고요히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동시에 영광의 왕이 오신다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온 세상 모든 만물을 향해서 그분의 영광스런 귀환을 부르짖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께 이 승리의 모든 영광이 돌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을 목자에 비유합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부족함”(1)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욕망이 아니라) 필요를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푸른 풀밭에 누이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듯 우리의 깊은 갈증을 채우십니다(2).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새 힘을 얻어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3).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바른 길을 걷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바른 길을 갈만한 힘을 얻도록 돌보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 다음 우리를 바른 길, 의의 길, 거룩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즉 목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공급 받아야 할 은혜가 있다는 것과 그 은혜는 우리의 거룩한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은혜가 고갈된 채 의롭게 살려 하면 율법주의가 되고, 의롭게 살려는 열망 없이 은혜만 구하면 신비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3)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그분의 이름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 자신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일을 행하시는 이유도 역시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모든 피조물에게 가장 좋은 일이 됩니다. 

이어서 다윗은 고난 중에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목자의 비유를 이어갑니다(4).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사람도 죽음의 그늘 골짜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 22편은 그런 처지에서 드린 기도였습니다. 믿는 사람의 차이는 죽음의 그늘 골짜기에서조차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에게는 막대기와 지팡이가 있습니다. 막대기는 양을 공격하려는 야수를 쫓아 버리기 위한 것이고 지팡이는 양들을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의 상황에 있을 때 막대기와 지팡이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것을 알기에 죽음의 문전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5절에서 다윗은 목자의 비유를 내려 놓고 전쟁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전쟁터에서 원수들을 모두 결박시켜 놓고 그 앞에서 잔치상을 차려 놓고 병사들에게 먹게 하는 장군처럼, 하나님은 그렇게 원수들 앞에서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높여 주신다고 말합니다. 머리에 기름 붓는 행위는 그를 씻어주고 원기를 회복시키며 영광스럽게 해 주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 내 잔이 넘칩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어 있습니다. 

6절에서 다윗은 이 모든 고백과 찬양을 요약하고 결론 짓습니다. “진실로는 자신의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르리니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추적하다라는 뜻입니다. 형사가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를 추적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이 평생 경험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그는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히 머물러 살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이 기도를 맺습니다. 

이 시편을 처음 읽을 때 우리는 정말 우리의 하나님이 이런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도 이렇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편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한 이 시편을 암송하며 묵상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절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눈물 흘리며 감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으로 가득한 세상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 없는 세상에 홀로 내버려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때로는 분노의 절규를 쏟아 놓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아 갑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 시편은 우리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다가옵니다. 

이 시편의 구절구절이 우리 마음에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진실로 그렇습니다,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단계에 이를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자리에 이르면 우리에게는 아무 부족함 없고 내 잔이 넘칩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러 살기를 힘쓰게 될 것입니다.


[D6묵상 가이드] 

목자였던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 라고 부를 때, 그 관계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쉬게 해주고, 먹을 것을 주고 보호해주면서 기본적인 필요를 채웁니다. 목자는 그들을 인도하고 포식자로부터 보호해줍니다. 목자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상처가 나면 치료해주고 앞으로 닥칠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다윗은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존재와 인도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려 노력할 때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초장에 있건, 물가에 있건, 심지어는 죽음의 골짜기에 있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바로 이 확신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방식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질문하기]

1. 최근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채우신 일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에서 하나님의 임재(존재)를 느꼈습니까?

3. 오늘 여러분이 의의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에 집중할 수 있 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