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무엇떄문에 슬퍼하며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느헤미야1장 1-11

  • Coramdeo
  • 2016-06-02
  • 693 회
  • 3 건
유다에서 온 하나니 일행에게서 고국의 참담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울고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내용가운데 6절말씀에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라는 내용이 제 마음에 도전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뿐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까지 자복하는 모습가운데 나는 우리 공동체의 연약함과 죄악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고 대신 공동체의 지체들과 의견이 맞지않거나 내가 판단하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그냥 내마음속에 그 지체들을 향하여 선을 긋고 적당한 거리에서만 교제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또한 답답한 마음으로 왜 변화되지않지? 왜 이러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저였었고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변화시키실수있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믿음의 상태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되면서 느헤미야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지금 가족의 일원과의 관계가운데도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가족의 일원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만 그 가족의 연약함과 과거의 죄악된부분을 위해 제가 회개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느헤미야처럼 가족을 위해 자복함으로  가족이 주님의 긍훌하심을 입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해설 내용중 우리가 비록 죄를 짓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일에 떄로 실패하더라도 권능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주의 종 이며 주의 백성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나를 비롯하여 내가 정죄했던 나의가족의 일원 공동체의 지체들 또한 여전히 주의백성임을 생각할때 감히 내가 판단한다는것은 정말 무지한 소치라 생각합니다
신앙이 성숙하다는것은 나자신으로 부터 벗어나서 공동체 나라와 민족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것일진대 ....
    • 느헤미야강 16-06-02
      늘 삶의 진솔한 이야기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어느날 크고 위대하게 만드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야긴과보아스 16-06-03
      묵상이 다분히 개인적인 묵상이어야 하는데 저는 개인적인것과 교회에 대한 묵상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환란과 능욕당했고,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고 문은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울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고국과 느헤미야는 어떤 관계였는가?
      그에게 신앙이 있고 선민으로서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든 첫번째 생각은
      느헤미야가 만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고
      선민의식이 없었다면 그리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우리 새새명교회와 혹은
      어떤 일들과 사건에 대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제가 신앙이 있고 교회성도라는 인식이 있으면 무엇이든 관계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내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교회가 무너지든 소망이 있든 없든 잘 지내든지 날마다 다툼으로 일관하든 거룩한 일에 마음을 쓰든 내가 하등의 문제의식을 가질 일 없습니다.

      나는 교회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인가?
      나는 신앙인인가?
      나는 신앙인이고 교회와 어떻게든 거룩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의 모든 일은 지나칠 일이 아니구나.
      어떤 형태로든 관심갖고 기도하고 참여해야 할 일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은근히 험담하고 불평하고 사이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신앙없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묵상을 하다보니 유대력 날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1;1 기슬르월은 12월이고, 2;1 니산월은 3~4월입니다.
      느헤미야가 고국의 소식을 듣고 왕앞에 나가기까지
      기도했으니 3~4개월 기도한 셈입니다.
      믿음은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기도도 인내를 필요로 한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조국의 안타까운 문제앞에서 기도를 그렇게 했습니다.
      교회의 허물어짐,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
      고마고마한 교회들이 가지는 한계들,
      어떻게 하든지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모습,
      그것이 느헤미야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일들이 교회앞에 직면해 있는지
      조금만 관심가져도 보이고 들려진 일들앞에서
      느헤미이야와 같은 슬픔과 탄식, 금식하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가 있어야 이 시대에 느헤미야로 사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기도하는 자리에 서지는 못해도
      기도할 수 있는 마음과 시간시간마다 기도로 동참하겠습니다.
    • 로뎀나무아래서 16-06-03
      코람데오님의 진솔한 나눔에 은혜가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내게 이익이 되면 가까이 할려고 했다가도 좀 손해가 될 것 같으면 멀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저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 당당하게 자유하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느헤미야는 조국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 내 형통함이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가 필요하겠지요, 특별히 내가 사랑하고 섬기고 있는 교회를 위하여, 모든 성도님들을 위하여 더 열심히 중보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