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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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9;1-8 융통성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것

  • 다니엘
  •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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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앞에 전심으로 회개하고 찬양합니가?

느헤미야 9;1-8


묵상 1.


7월15일부터 22일까지 초막절로 지켰다.

23일에는 성회로 모였다.

24일에 다시 모였다.

초막절에 말씀을 읽으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영적갈급함,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금식하고, 회개했다.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했다.

낮의 1/4은 말씀을 듣고 낮 1/4은 자복하고 경배했다.


회개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데에서 온다.

내 생각, 감정으로 자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회개는 입술로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에서 돌이키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게 영적부흥이다.


깨달으면 회개, 찬양하게 되어 잇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이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찬양하게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

모든 것 지으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

아브함을 택하시고 인도하시며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신 분.

아브라함이 충성됨을 보시고

언약을 세우고

말씀하신대로 이루신 하나님.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내 이름 부르신 하나님.

아브라함처럼 충성한다면

나에게도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모든 이방사람들과의 절교 선언!

당시 이 절교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거래를 끊음을 포함한다.

거래라면 많은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말씀이 내 삶에 들어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헌신, 포기가 있어야 한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 때문에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이 나를 주장하는 삶을 위해

나는 포기한 것이 있는가?

혼합, 적당히, 섞여서.

융통성이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잘못된 습관들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하루 하루 눈 뜨자마자 바쁘다.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한다.

이사람 저사람도 만나야 한다.

그러나 그 길만 있다면 위태한 길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길이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내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가

나의 존재를 결정한다.


24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바라보야 할 하나님은,

하나님 사랑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참된 회개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걸맞는 헌신과 포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융통성이라는 명목으로 내 삶에 들어와

잘못된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적당히! 대충! 좋은게 좋은거야!


묵상 2.


왜 묵상하고 영성일기를 써야 하는가?

성경에 그런게 있는가?

시편 전체가 영성일기이다.

이 땅의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묵상과 더불어 일기를 써왔다.

말씀묵상과 기도, 성경읽기, 그리고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영성일기

그래야만 하나님과 내 자신과 이웃을 보게되고

나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비울 것 비워내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단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을때

그 역사를 실행하신다.

그렇기에 영성일기는 곧 은혜를 담아내는 그릇과도 같다.

은혜를 담아내는 그릇이 내 안에 있느냐 없느냐는

영적 생활에 큰 차이를 준다.

받을 은혜,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음에도

내 마음이 메마르고 허덕이는 것은

부어주시는 은혜를 담을 그릇이 없기 때문이다.


폭포수 밑에서도

장마비 아래에서도

담아낼 그릇이 없으면

아무것도 내게 남은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