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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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1;1-15 디오드레베가 아니라 가이오!

  • 야긴과보아스
  •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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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본문에 나온다.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와 그리고 데메드리오이다.

그 중에 두 사람은 사도 요한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지만,

한 사람은 저주할 정도로 비판했다.


이들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입만 열면 사랑! 사랑! 을 외치던 사랑의 사도 요한.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에게 요한은

그 행한 일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소행이 얼마나 못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디오드레베는 가이오가 섬기는 교회의 지도자였던 것 같다.

으뜸되기를 좋아하고

틈만나면 악한 말로 비방하고

형제들을 내 쫓았다고 증언한다.

그는 권력욕와 소유욕이 많아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 공동체가

사도요한의 영향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순회전도자들을 거부하고 내 쫓았다.

디오드레베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마치 자신의 철옹성처럼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에 가이오에게는

이 편지의 수신자로 지명했고,

그의 영혼과 육체의 건강까지 복 빌어주었다.

그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도와 주었고,

당국의 눈을 피해 사역하는 순회선교사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디오드레베 같은 반대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는 바 옳은 일을 위해 기꺼이 섬기기를 기뻐했다.


아무리 경건하고 영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입만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손과 발로 베풀고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요한이 가이오를 생각할 때

가슴이 벅찼던 그 기쁜 감정과

가이오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축복이 나왔는지

이 편지의 전체 문맥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그 배경을 생략한채 한 구절만 붙들고

‘주여 믿사오니 나의 인생 가운데

영혼과 범사와 건강의 3박자 복이 넘치게 하소서’

하고 매달린다면 바른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때 그것이 전부이고 진짜인것처럼 선포하고 

그게 참 복음인것처럼 회자되었던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이오가 얼마나 기뻤으면 그런 축복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말을 쓰는 사도요한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외국에 자녀들을 공부 때문에 보내거나

세계 각처에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녀들로부터

평안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으면 힘이 난다.

특히 기대하고 바라는대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더할 나위 없다.


사도요한 역시 사랑하는 성도들의 소식을 들을 때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이오는 요한이 낳은 영적 자녀이다.

그동안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말씀으로 양육해온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산다는 소식을 들을 때

요한은 영적 아비로서 기쁨을 누렸을 것 같다.


사도요한은 가이오에게

영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이

참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녹록치 않은 환경속에서 믿음의 바른 길을 걸어가는 그에게

영혼의 축복과 평안의 길 안에서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그 사명 잘 감당하려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이 필요함을 알았기에

이 축복의 말을 싶었던 것이다.


나 역시 사도요한의 기쁨을 소망한다.

교회들을 방문하고 돌아온 형제들이

요한에게 각 교회들의 상황을 보고할 때 해 주었던 말처럼

우리 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그가 진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의 건강한 영적생활에 대해 칭찬하고,

그 말을 듣고는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나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


이런 일들이 우리 공동체안에서도

가득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디오드레베가 아니라

가이오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