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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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5;10-15 _영적전쟁

  • 다니엘
  • 20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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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과 겸손함으로 영적전쟁에 임하십시오

여호수아5;10-15


10절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로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들의 생명을 살려준 것은 어린양의 피였다.

오늘 내 인생의 유월절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사건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죽음에서 건져내셨다.

그런의미에서 성만찬은 늘 가슴먹먹할 만큼 특별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한적은 없으나

성만찬을 통해 떡과 포도주가 내 몸에 임하듯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내 속에 임했음을

보여주신다.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받고

보호받으며 살아왔다.

그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오늘 나를 이끄신디.


12절, 그 땅에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다.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임이 놀랍다.

할례와 유월절을 통하여 거룩함으로 준비케 하시고

만나를 그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때가

정확히 추수철이 시작될때이다.

정복하는 것만으로도

가나안땅의 소출을 먹게 하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가장 적절한 때에 인도하시고 공급하셨다.

말씀이 내 속에 힘이되는 것은

언제, 어느곳에,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염려할 것 없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정확하시기 때문이다.

만나가 그친 후에는 그 다음해부터

손으로 직접 땀을 흘려

농사를 지은 열매를 먹게 하셨다.

축복은 믿음의 성숙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다.


갓난아기는 부모가 모든 것을 챙겨준다.

그러나 성장해나가면서는 자신의 힘으로 해야한다.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의 광야시절처럼

하나님이 무조건 다 책임지고 먹여주시던 때가 잇다.

그러나 성숙해지면 스스로 일해서 먹게 하신다.


히5;12-14절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하나님은 홍해를 건널때에는

모세의 지팡이를 들어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고

그 뒤에 건너게 하셨다.

반면에 요단강을 건널때에는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믿음으로

요단강 물에 발을 담글때에 물이 멈추어섰다.

믿음이 적을때는 보고 행하게 하셨으나

믿음이 되었다싶을때는 행함으로 보게하셨다.


14절,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으니라

15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통상적으로 여호와로 인식한다.

성경에 천사에게 경배했다는 표현은 없다.

여호수아가 엎드려 절했다는 것은 하나님이심을 알았다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심을 알앗다.

일상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임재하시는지 알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였던 사람이었기에

금방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하나님과 친한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빨리 알아 듣는다.

하나님과 친밀하면 하나님의 뜻도 빨리 깨닫는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군대장관,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러 온것이 아니라

자신을 대신하여 지휘관이 되려고

오셨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까지 모세의 뒤를 이어 감당할때에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있었는가?

이제까지 자신의 지혜와 전술에 의지했다면

이후로는 작전권을 이행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전쟁도 책임지실 것이다.

책임감, 걱정이 크면 스트레스도 그만큼 크다.

하나님께 책임을 넘겨드리면

홀가분해진다.

자유롭게 된다.

자유, 평안함, 기쁨,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 내 인생의 작전권도 이양하면

그때부터 비로소 자유케되고 평안함을 얻게 됨을 깨닫는다.


우리는 예전처럼 눈에 보이는 전쟁터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더 심각한 영적 전쟁테 한 가운데 있다.

우리의 영적 전쟁도

우리의 신발을 벗고 하는 것입니다.

신발은 나의 이력이다.

내 지식과 경험, 나의 육신과 세상적인 생각들의 총체이다.

세상 속에서 살던 육신의 생각,

세상 적인 생각을 다 버려야 한다.

그것을 겸손이라고 한다.

우리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대장이 되셔서

우리의 앞서서 싸우신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군대장관이 되셔서

여호수아 앞서서 싸우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무기로 삼고

예수님이 우리의 대장이라는 것을 알고

모든 영적 싸움에 임해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보이는 문제 뒤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있다.

이 싸움을 잘 싸워야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싸움이어야 승리가 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