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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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됨과 정결함, 하나님 임재로만 됩니다 - 겔 37:15~28
- 디모데준
- 2016-04-15
- 792 회
- 1 건
19절: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이 구절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이셔서 한 막대기로 회복 시키셨을까?
유다의 막대기를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에 안붙이시고?
말씀을 읽으며 생각하다보니, 제 궁금점의 답을 나름 찾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막대기에 붙이신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유다의 지파로 오시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가 유다의 막대기를 통해 회복 되었듯이..
나의 삶이 예수님이란 막대기에 붙임을 당할때,
하나님과 단절 되었던 관계가 다시 하나로 회복 되어서 그렇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말씀 포도나무와 가지 말씀도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요15:6절 -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회복의 자리에서만 머무는게 아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규례를 준수하고, 하나님의 율례를 지켜 행하는 자리까지 (24절),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자녀가 되시길 바라신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요한복음 15장 6절 이후 말씀에
예수님께서 자기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며 내 사랑 안에 거하라 (10절)
라고 말씀 하신걸 보며, 오늘의 에스겔 본문과 요한복음 15장이 비슷하다는걸 보게 되었습니다.
막대기와 가지.. 회복..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삶..
에스겔의 말씀과 요한복음의 말씀이 같네!! 우와!! 하는 순간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회복의 자리까지만 나오고,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회복의 자리에서 일어나, 영광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제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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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16-04-16
- 유다에 붙이게 하셨다는 것은 메시야가 유다지파의 후손에게서 오시기때문이라는 묵상이 특별하고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저는 은혜로운 묵상이라기보다는 에스겔이 쉽지 않은 내용인데다가 오늘 본문이 가지는 애매한 부분은 성경적 배경을 토대로 다소 어렵게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20160414(목) 말씀큐티와 묵상일기
하나 됨과 정결함, 하나님 임재로만 됩니다
에스겔 37;15-28)
솔로몬 분열이후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했다.
사랑하는 민족이 분단되고 멸망하는 시점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한 사람이 에스겔이다.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너진 조국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가?
기도하는 중에 에스겔은 2가지 응답을 받았다.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19절)
갈라졌던 민족이 하나님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통일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신다면
우리는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해야 될까?
하나님이 하나되게 하실것이지만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은
네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막대기 둘을 가져와
하나는 북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에브라임이고
다른 하나는 남유다로 대표되는 유다라 쓰게 하고 합치도록 하셨다.
나뉘어지고 포로된 둘은 하나로 만드시겠다 하신다.
시청각교육을 하셨다.
이 모습속에서 에스겔은 무엇을 느겼을까?
하나되게 하시려는 구나.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나됨, 회복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 같다.
하나됨을 위해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됨이라 하지만
억지로 하나되게 하시지 않으신다.
사람안에서 하나됨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우리안에서 하나되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
둘을 하나되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하님과 우리사이에 나뉘어진 것을
우리의 화평을 위해 중간에 막힌담을 허셨다.
본문이 주는 요구와 책임이 있다.
건강한 리더십이다.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시겠다 하셨다(22절)
그 한 사람이 뜻 밖에 다윗(24절)이라 하셨다.
뜻밖이다.
다윗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역사속의 인물이다.
그런데 에스겔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다윗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그와같은 리더십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다윗 후손으로 오는 메시야만이 궁극적 리더십이자 소망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다윗의 리더십은 어떠했을까?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 남쪽 지파중심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보다 더 큰 힘이 있었다.
10지파를 주축으로 한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었으나 공격하지 않았다.
흡수통일을 시도하지 않았다.
다윗은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섬겼다.
다윗은 기다렸고 북이스라엘의 사울이 죽었을때에
그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 슬퍼하였습니다.
므비보셋 사울의 손자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식탁에 함께 앉게 하였다.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가며
남, 북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자가 되었다.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찾을때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남북 지도자의 공동 추대를 받아
통일왕국 국가의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지금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역사속에도 이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섬김의 사람, 긍휼의 사람, 기다림의 사람, 무엇보다 평화의 사람.
왜 하나되어야 하는가?
거기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거기서 자유롭게 예배하는 것 때문이다.
37;26절 하반부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통일된 나라에서 가장 보고 싶어하셨던 것이 예배이다.
그 가운데 성소를 세워 영원히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 성소에서 하나님의 경배하고 찬양하며 은혜를 나누며
사랑하며 사는 그러한 통일된 조국을 보고 싶어하신 것이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 그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은혜아래서
마음껏 예배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무슨 방법으로
이런 조국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2가지를 하도록 하신다.
첫째는 그 뼈들에게 대언하도록 한다.
둘째는 생기야 너희가 마른뼈들에게 들어가서 살아나라 명령합니다.
그러자 거대한 군대가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환상이다.
한 개인이든, 민족이든
마른뼈 같아도 그 위에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시면
이런 역사는 어느곳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독일 통일의 주요한 시발점은 동독에 있었던
작은 기도회가 시발점이 되었다.
1982년 동독 라이프찌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교회의 교인 몇 사람이 주일에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월요일에 몇 명이 모임을 가졌다.
맨 처음에 7명이었습니다.
목사님도 가끔 참석했습니다.
이 기도회가 무려 7년간 지속되었다.
어느 한 시점인가 이 기도회가 소문이 났다.
그리고 이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느순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7년후 1989년 9월 11일 월요일 저녁 25,000명이 모였다.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었는데
그 교회는 2,000명이 정원이었기에
나머지는 밖에서 기도했다.
그날따라 기도회를 인도하던 리더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가 통일을 위해 땅밟기를 하자.
이 땅에 평화를 위해 평화적인 시위를 하자.
평화의 피켓을 들고 행진이 시작되자
25,000명은 무려 10만명이 되었다.
1989년 9월 11일 저녁,
그 달이 지나가서 마침내 베를린 장벽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무너지게 되었다.
기도로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인간의 최선이 필요하나 오직 기도만이 능력이 되었다.
가정이든 교회 공동체이든 둘을 하나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 일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중보기도이다.
성도들과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가 더 많이 필요하고,
함께 기도하는 중보기도자들이 세워지도록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