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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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1;12-21 유언은 이정도는 되어야

  • 다니엘
  • 20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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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다.

예수 믿는 성도의 상태를 말해준다.

우리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고,

그 진리위에 서 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진리외에 다른 것은 없다.

예수는 길, 진리, 생명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터를 닦아 놓으신 까닭에

우리는 진리위에 서 있을 수 있다.

학문, 철학, 종교로는 안된다.

오직 예수만이다.


베드로 사도는 자기가 죽을 날이 가까워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이미 진리에 서 있는 성도들이지만

그들을 더욱 일깨워 주어야 하는 것이

죽기전에 자기가 할 일임을 알았다.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어느때나 자기의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진리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잊는 순간 진리에서 멀어진다.


베드로 사도가 주는 묵직한 도전이 있다.

그는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 이후 다음세대들이 복음앞에서 바르고 분명하게

서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또 가르치고 권면하고 있다.

나는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무엇을 준비하고자 할까?

자녀들에게 후배들에게 우리가 죽은 후에도

복음의 본질을 생각하는 이들로 세워야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요한복음 21;18,19절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이 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갔지만

늙어서는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그는 임박한 죽음앞에서

주님의 말씀도 생각났을 것이고,

자신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핍박과 고난앞에서도

복음, 진리를 항상 생각나게 하고자 했다.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12절)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13절)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14절)

‘내가 떠난 후에라도’(15절)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자라”(16절)


복음은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과 호흡, 걷고, 먹고, 잤던 증인이요 목격자이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제자들이다.

꾸며댄 이야기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생명 내어 놓을 이는 없다.

스데반이 순교했고,

바울이 핍박자에서 생명을 전하는 자로 바뀌었다.

수많은 제자들과 성도들이 순교자의 삶을 살았다.

교묘한 이야기라면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그렇게 일관되게

오실 예수, 오신 예수, 다시 오실 예수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야기속에 더 큰 은혜가 있다.


19절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그 음성도 들었던 사람이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그 경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 곧 성경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구약성경의 증거와,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것,

자신이 직접 본 체험들이 복음에 대한 확신을 증언하지만

보다 더 확신한 것은 성경, 곧 말씀이라고 한다.

우리중에 그 누구도

예수님을 직접 본 것도

그 음성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베드로가 소유했던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

그리고 성경이 있다.

역시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 평생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경을 통해서 내 삶의 인생을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성경을 통해서 살고 죽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