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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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허물을 덮을때 - 잠언17;1-12

  • 은혜로다
  • 2015-11-18
  • 931 회
  • 2 건
잠언17;1-12
 
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2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4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7 지나친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하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
8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0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11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받으리라
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비결(1-6)과
미련한 사람이 끼치는 악(7-12)에 대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가득한 집에서 다투면서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신 말씀은
가난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정은 그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때에 가능함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 한 가정이 아름답고 행복햐나의 기준은 무엇을 많고 적게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냐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가정에도 고난과 환란은 있습니다. 이 문제를 도나기와 풀무비유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가니가 은을 풀무가 금을 연단하는 것과 같이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에게 가난이 있고 우리가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
혹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날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정금같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과 금이 나오기 위해 도가니와 풀무로 연단하듯이
하나님도 우리 마음을 연단하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향할때 그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임을 말씀합니다.
고난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가정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미련한 자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특히 12절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자를 만나지 말것이니라.
새끼를 빼앗긴 암곰은 최고의 분노와 화,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없는 화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미련한자를 만나거나 미련한자 만나는 것은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나 해를 당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비유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마디 질책과 권면을 금방 알아채고 자신을 고치지만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 느헤미야 15-11-18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난하다고 불행하다거나 부자라서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난하면 행복하고 부자는 불행하다는 말도 아니다.
      너무 많다는 것 때문에 다툼이 된다면 소유가 불행이 될 수 있고
      가난하지만 화목할 수 있다면 행복이 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많고 적음 때문에 우리의 행복이 결정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말씀은 아니다.
      그 마음에, 가정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임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여기까지는 당연한 묵상이다.

      그런데 솔직히 정말 그런가?
      내 자신과 묵상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것이 있다.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그러면 나는 매일 매일 행복한가?
      화목한 삶을 살고 있나?
      단순히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때문이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는가의 문제를 보게 하신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너무도 완전하게 믿기 때문에
      넉넉해도 교만하지 않고 다툼가운데 서지 않을 수 있고
      비록 가진적 적어 힘들어도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음을 알기에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
      그때 상관없이 감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때 3절 말씀이 은혜로 다가오는 것이라 믿는다.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순금이나 순은은 도가니와 풀무를 통해서 나온다.
      연단이 없으면 금과 은은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가치는 없다. 원석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도가니와 풀무라는 연단을 거쳐
      가치 있는 금과 은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이유를 비유로 말씀하신다.

      오늘 나를 생각한다.
      삶이라는 도가니와 풀무에서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할 때
      오늘 말씀으로 내 삶을 잘 해석하면 좋겠다.

      이 말씀에 비추어 1절을 생각해본다.
      내 인생을 고난이라는 도가니와 풀무에 넣어
      은이나 금을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을 믿게 될 때
      가난도 극복이 되고, 부자라고 해서 교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말씀으로 인생의 고난을
      해석할 수 있다면 큰 복이다.
      그것이 해석되면 가난해도 화목하고
      해석이 안되면 부자의 자리에서도 다툼이 되는 것이지 싶다.

      8절 말씀이 재미있다.
      그동안 뇌물은 굽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문자적으로만 보면 뜻 밖이다.

      '뇌물은 그 임자가(뇌물을 주는 사람) 보기에 보석 같은 즉
      그가(뇌물을 주는 자)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잠17;8절)는 말이다.
      완벽한 뇌물 예찬론이다.

      '뇌물'은 히브리어로 '쇼하드'인데
      '뇌물'과 '선물'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뇌물'로 번역되지만
      잠언에서는 자주 '선물'로 번역되었다. (6:35, 18;16, 19:6)
      여기서도 '선물'의 의미에 가깝게 사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난, 두 가지 뜻이 다 있다고 묵상이 된다.
      세상에서는 뇌물(즉 돈의 가치)이면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다고 여긴다.
      사람마음도, 지위도, 명예도 이것이면 다 될것으로 여긴다.
      그러니 이 물질로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이 형통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뇌물을 누구나 좋아하는 보석처럼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물로 읽으면 참 멋진 구절이 된다.

      ‘선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8절)

      그렇다면 뇌물이 아니라 선물을 기뻐하는 자가
      얼마나 귀한 인생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 뇌물과 선물은 어떻게 다를까?
      -선물은 어떤 이기적인 목적이 없이 순수한 감사의 표시로 주는 것이다.
       뇌물은 어떤 이권 취득이나 부당 이득을 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선물은 주로 어떤 일의 사후에 주어지고,
        뇌물은 주로 사전에 몰래 찔러 준다.
      -선물은 공개되어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뇌물은 밝혀지면 쇠고랑 찬다.
      -선물은 그리 비싸지 않은 물건의 형태이고,
        뇌물은 현찰 위주다.(사과나 박카스 상자 포장)
      -선물은 주는 자나 받는 자나 마음에 감사의 기쁨이 있지만,
        뇌물은 주는 자가 받는 자를 얽어매기 위한 거래관계 일뿐이라 냉랭하다.

      -뇌물은 대부분 일의 효과가 신속하고 직접적이다.
       그러나 매번 단발 적이고 후에라도 탈이 생기면
       그렇게 얻은 부당 이득을 모두 토해내야 된다.
       불법이기 때문이다.
       선물은 효과가 없는 듯하지만 상대의 마음에 남아 있어
       장기적이고 안전한 효력을 발휘한다.

      행복축제를 위해서도
      선물을 잘 활용해야겠다.

      뇌물은 분명 '덫'이지만,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잠언 18:16절)

      더 나아가 내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덤으로 받은 선물 인생이니
      다른 사람에게 기쁜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잘 살아야겠지 싶다.

      17:10.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종종 어떤 일에 대해서 권면을 하다보면
      속상하고 힘들어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 자체를 못 견뎌 하는 이들이 있다.
      말씀을 보니 총명한 자가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리면한 자는 받지 못한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충고나 권면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미련한자가 되지는 말아야 싶다.

      12절 말씀이 두렵게 한다.

      17:12.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새끼 빼앗긴 암콤의 난폭함이란 상상을 불허한다.
      이런 난폭한 암콤에게 안전을 기대한다든지
      또는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자에게 거는 기대는
      이런 암콤에게 거는 기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미련한 자에게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아니 기대하지 말라는 말로 다가온다.

      조금 걱정되는 것은
      혹 누군가가 이 묵상을 읽고
      미련한지 총명한 사람인지
      강력한 충고를 가지고 시험할까 두렵다(*^^*)
    • 코람데오 15-11-18
      아멘
      여전히 환경때문에 가끔은 위축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다른사람과 비교하며 내 처지를  한탄할때도 있습니다
      나를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체험햇음에도
      나의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