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나오미는 빈 손이 아니었다_룻1;15-22
- 야긴과보아스
- 2017-05-03
- 646 회
- 3 건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1:21)
흉년이 들어서...(1:1)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말론과 기론을 데리고
하나님의 땅을 떠나 모압지방으로 이민을 갔었다 했다.
그때 얼마나 큰 재산을 가지고 떠났길래,
십년만에 만난 고향사람들 앞에서
풍족하게 나갔더니...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나오미가 의미하는 풍족은
물질적인 넉넉함이기도 했을 것이나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던 ‘남자들’
즉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론’ 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을 잃어버렸으니 그녀는 정말 빈 손 이다.
그런데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 라 부르라는,
나오미의 솔직한 고백처럼
그녀는 정말, 텅 빈 상태였을까?
그 당시 나오미에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죽은 남자들 밖에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그 어떤 주제도 없었겠지만,
지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내게는
나오미의 텅빈 인생을 채.우.기. 시.작.하.는.
‘룻’ 만 보인다.
그녀는 이미 빈 손이 아니었다.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1;22)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룻2;18)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룻3;17)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너를 사랑하여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룻4;14~17)
룻기를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룻을 통해서 나오미의 빈 손을 채워가시는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이가 나오미냐?(1:19)
하고, 불쌍하게 물어왔던 고향사람들의 입이
나오미의 여호와를 찬양하기에 이른다.(4:14)
그 하나님이 내게, 봤지? 하시는 것 같다.
지금 내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룻’ 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룻을 무시하고 혹시,
빈 손 이라 얘기하진 않느냐고 살짝 책망하신다.
잃어버린 엘리멜렉-말론-기론 세 남자를 몽땅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막강한 유력자 ‘보아스’를 룻.이. 데리고 온다며,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그리고 유.력.하.게. 여.기.는.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오미의 채워짐은
동역자 룻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함께 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가족으로부터
놀라운 역사를 쓰실 하나님을 새롭게 기대하게 된다
함께 큐티하는 이들로부터,
아름다운 역사를 쓰실 하나님이 기대된다.
하나님이 내게 무언가 선물하시려는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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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준 17-05-03
- 아무 보장이 없어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 - 룻1:15-22
어제와 오늘 말씀을 읽으며 "선택" 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세상 눈으로 볼 때 희망이 있지만, 믿음을 잃었던 엘리멜렉의 선택과,
세상 눈으로 볼 때 희망이 없지만, 믿음으로 믿고 내렸던 나오미와 룻의 선택.
주님을 향한 믿음 있는 선택과 없는 선택의 결과는 정 반대인걸 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엘리멜렉처럼 육신의 편안함을 쫓아 세상과 타협하며 선택하는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 가운데서,
내 안목을 따라 택하는게 아닌, 말씀과 믿음을 따라 선택 할수 있는 저가 되길 소원합니다. -
- 느헤미야강 17-05-03
- 주님을 향한 믿음 있는 선택과 없는 선택의 결과는 정 반대인걸!
세상 눈으로 볼 때 희망이 없지만, 믿음으로 믿고 내렸던 나오미와 룻의 선택.
귀한 묵상과 도전받습니다. -
- 다니엘 17-05-03
- 나오미로서는 사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금의환향도 아니고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채
그야말로 실패자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 말대로 풍족하게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그런 비통한 형국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돌아 왔다.
체면불구하고, 자존심 꺾고, 뻔뻔스럽게도 돌아 왔다.
여호와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 속에 ‘여호와’, ‘징벌’, ‘전능자’라는 말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모르긴 몰라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 왔지 싶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하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마치 집 나간 탕자처럼 돌아온 것일게다.
정말 잘한 것 같다.
만약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룻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페이지를
단연코 장식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불행한 점은 그녀가 모압 땅에서
비참하게 죽어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창피해서, 면목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만약 안 돌아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고 보면 돌아온 것은
나오미 생애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자로 인생 끝날 줄 알았는데,
대 역전극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매 순간마다 우리 주특기는 돌아가는 것이고,
우리 주님의 주특기는 받아 주는 거다.
죽을 죄를 지었을지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것...
비통한 나오미의 심정이라도,
면목 없는 작은 아들이라도 돌아가야 한다.
주님은 단 한번이라도 실수한 자를, 죄인을,
실패자를 받아 주지 않는 경우가 없으시다.
죄송해서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내 인생 중 가장 잘 한 일은
주님께 돌아온 것이다.
그게 가장 잘 한 일이다.
이 땅에 나오미처럼 풍족함으로 시작했다가
비어진 인생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누군가가 베들레헴에 보리 추수할때가 되었다고,
새생명교회에 참 안식과 평안이 있다고
말하고 보여주는 이들이 있어
돌아오는 자들마다 다시 회복되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 일에 온전히 쓰임받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