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전력질주 - 룻2;8-16
- 야긴과보아스
- 2017-05-04
- 629 회
- 1 건
오늘도 룻은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의 밭에 떨어진 이삭이라도 주워오겠다고 결심을 하고,
시어머니의 허락까지! 받고 집을 나선다.
나오미와 룻에 관한 소문이 좍 퍼졌을 테니,
룻만 나가면 사람들이 수군수군 했을텐데,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같이 가요…하지도 않고
혼자서 잘도 나간다.
어떻게 저렇게 체면 불구하고 하나님을 따라갈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룻에게 어떤 분이었을까?
룻에 대한 보아스의 표현에서
하나님과 룻의 관계가 얼마나 각별했었는지 볼 수 있다.
12절 …작은 새가 자기 어미 날개 아래로 피하듯이
당신이 여호와께 왔으니,…
바로 작은새와 엄마새의 관계였다.
쪼끄만 아기새가 들짐승을 피해
엄마새에게로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작은새의 시야에는
오직 엄마새 밖에는 들어있지 않을것이다.
자기의 뛰는 모양새가 어떤지,
깃털이 바람에 마구 날려서 가르마가 우스꽝스럽게
타지지는 않았는지 신경쓸 겨를이 전혀 없다.
어떻게든 엄마의 날개밑으로 가는 것만이 지상목표다.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선택하기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한 룻의 삶이 딱 이모습이라고 하신다.
엄마만이 살길이라며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오는
새끼를 보는 엄마새의 마음을 또 어떨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룻에게
<우연히…>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그를 인도하신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간 밭이 하필이면 보아스의 밭이고,
그 때에 하필이면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돌아온 때 이다.
룻은 이 모든것을 계산하고 나간것이 아니고
1장에서 한 맹세를 행동으로 옮긴것 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맹세를 지키지 않는 다면,
여호와께서 제게 무서운 벌을 내리셔도 좋습니다.
오직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17절)
룻이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씩씩하게
살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떤 신비스런 이유나,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비결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앞에서 한 약속을 지켜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부러운 룻의 태도는
나도 오늘 당장 가질수 있는 삶의 자세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지키지 못하게 하려는 세력이
온 마음을 다해 방해공작을 펴기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온 마음을 다해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려 애쓸때엔
다른것들이 눈에 들어올 여유가 없다.
작은 새의 눈에 엄마새만 보이는 것처럼…
룻과 같이 작은새가 되기위해
어떤 적용을 할수 있을까?
하나님께
말씀앞에
매일 묵상앞에
만나는 사람에게
전력질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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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 2;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룻이 차마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황송했을 것이다.
보아스 같은 사람과 식사자리라...
아직, 수저를 들 엄두를 못 내는 경직된 룻을 이해한 걸까?
이리 오라고 상 가까이로 룻을 재촉해 주는 보아스이다.
떡을 먹으라고 접시를 룻 쪽으로 밀어주었을 것 같다.
초에 찍어 맛나게 먹으라고 종지도,
접시 옆으로 옮겨 주었을 것 같고.
룻의 반응을 상상해 본다.
룻은, 부끄러운 손을 무릅쓰고,
떡을 초에 찍어서 먹고싶은 양 대로 먹었나보다.
보아스가 남은 음식을 투고박스에 담아 줄 때,
사양하지도 않았나보다.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2:18)
내가 룻이었다면 그때 어떻게 반응했을까···?
룻 은, 참... 자존감이 높은 여자였던 것 같다.
근데, 원래 룻이 그런 여자였을까···?
혹시...
혹시, 모진 세파에 깎인 자존감이
보아스 앞에서 사르르 회.복.되.고. 있.는. 중.은 아니었을까···?
룻에게 묻고 싶다.
“룻, 당신은 정말
친정어머니에게도 남편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아본 여자입니까?
그래서, 과분한 호의를 내 것으로 당당히 받을 줄 아는 겁니까?”
집안의 세 남자가 일찍 죽고 남편도 죽고, 낯선 타향살이에...
눈물의 골짜기를 통행하는 동안 이른비(하나님의 은택)를 많이 맞아서(시편 84편)
그렇게 넋살 좋은 성격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는...가능성을
룻에게 대입해 보는 건, 나의 지나친 억지일까···?
어린 시절...밥상에서,
아버지 없이 자란 티 내면 안된다며
늘 조심에 조심스레 먹곤 했다.
밖에 나가선 늘 공손하고 친절하라 하셨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예의바름이었을 테지만
훗날 그것은 무언가모를 아쉬움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인가?
성장 과정 탓인지,
내 몫으로 돌아온 것마저도
내 것이라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 형성되었다.
칭찬도 당연한 것으로 받기보다
의례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려니 했다.
큐티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난 후...
치유의 광선에 쏘임받아 단번에 낫길 수없이 기대했지만,
하나님은, 글쎄...
키모테라피를 받는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통해
더 아프게
상처를 건드리시기곤 했다.
아플 때마다 하나님께 묻곤 했었다.
‘왜 내게, 기본생존권의 문제가지고
먹을 것 갖고 설움을 겪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까?’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점차적인 깨달음을 주시며
내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오셨다는 걸, 이젠 안다.
때로는
매일 매일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것이
은혜 중의 은혜임을 알아가게 하셨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는 내게,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성경 66권 모든 말씀이 내 말씀이니
다 먹으라고 하시며
내 쪼그라든 자존감의 위(stomach)를 팽팽하게 만드셨다.
모압의 과부같이 스스로 쪼그라들던 내게,
아침마다 왕의 밥상을 차려주시며
내 젓가락을 막지 않으셨던
말씀속의 하나님이
내겐 길르앗의 향유, 최고의 약사이셨음을...
오늘에서야 말씀 드리고 싶다.
마태복음 26:26~30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 니라...
떡을 먹으라, 잔을 마시라...
촌구석에서 고기나 잡으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며
일생을 마감했을 어부들,
일생 돈독이 올라,
직사각형에 시퍼런 얼굴로 변모? 되었어야 마땅한 세리,
하늘나라 음식을 소화할 수 없는 그런 제자들을 앉혀놓고
그들이 대접받기엔 너무 값이 지나친
살과 피를 먹여주신 예수님.
내가 입은 상처의 틀 속에 가족을 집어넣고
<우울한 가족사>를 만들었을 나,
오직 성공만을 위해 치달으며
한계에 부딪치며 좌절했을 나,
점집을 돌아다니며 엄청난 부적을 샀을 나,
그런 해괴망측한 나를
주님의 존귀한 식탁에 불러앉히시고
아들의 살도 먹이시고 피도 마시우신 하나님.
이미 지난 어느날 엔가...
주님의 생명세포는 소망없는 삶 때문에
사는 것 조차 힘들어하고 버거워하는,
썩어들어가는 내 세포에 이식되고
마침내 나를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셨다.
그걸 신묘막측이라 한다지.
그것이 얼마나 큰 희생이셨는지를,
얼마나 과분한 사랑이었는지를
룻기 묵상중에 시큰거리는 코를 잡고···!
주님의 그 사랑을,
내가 어떻게 누려야지 주님이 기뻐하실 지도...
재발견해 간다.
기도제목을 나눌때마다 주저하던 내가
이제는 당당하게 내어 놓는다.
구하면서도 <내 자신>을 보면,
내가 그걸 구할 자격이 되나···?
멈칫하곤 했다.
망설였던 때.
나는 안다.
그런 면은,
일종의 내 상처에서 파생된 속사람인 것을.
이런 나를
보시다보시다 안스러우셨는지...
룻기로 찾아오셔서,
내 손에 수저를 꼬옥 쥐어주시며
딸 같은 아들아~
너를 위해 차려진 밥상이야,
맨밥만 먹지말고 이것도 먹어~.
목 막힌다,
물을 건네시며
내 턱 밑으로 상을 밀어주시는...
보아스 같기만 하신 나의~ 하나님~!
나를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