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기다림 - 민4;1-20
- 다니엘
- 2017-05-17
- 721 회
- 1 건
고핫자손이 회막 안 지성물에 대하여 할 일이 이러하니라(4:4)
고핫자손이 할 일이...이러하니라...
그런데, 5절에서 14절까지 자세하게 나열된 직무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해당되는 직무이다.
15절에 이르러서야, 고핫의 직무가 언급된다.
고핫 자손이 해야 할 일은,
달랑! 메는 일! 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기구덮기를 필하거든
고핫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찌니 죽을까 하노라...(15절)
내가 고핫자손이었다면,
분명히...한번쯤 보고 또 한번쯤 만졌을 것이다.
제사장들의 작업진행속도가 굼뜨다고 판단될 때,
조급한 마음에 제사장을 재촉하려다가....성물을 보게 될 것 같다.
제사장이 실수로 성물을 넘어뜨리거나 떨어뜨릴 기미가 보일라 칠 때,
민첩하게 도와 주며 오버하다가...성물을 만지게 될 것 같다.
내 속도와 내 계산에, 제사장의 직무를 끌어다 맞추려 하다가
죽음을 초래할 수 도 있었겠다는, 나름대로의 상상 속에서...
<기다림>과 <신뢰>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과 만난다.
성막을 거두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필요할까?
행진 할 때에...(5절)
행진 할 때에...(15절)
행진을 하기 위해서 였다.
<행진> 의 의미가, 내게 새롭게 다가온다.
민수기의 행진은,
멈춤과 이동이 반복되는 행진이다.
그 행진에는, <기다림>도 있다.
이 행진의 원리는, 오늘 날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내게도, 기다림을 허락하셨다.
잠시 잘 움직이며 진행되던 나의 생활과 계획들이,
이런 저런 일들로 일시 정체된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갇히고, 다시 묶였다.
예수 믿는다는 것과
믿는자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르고
이율배반적일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선한목자는 맡겨진 양떼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데...
너무 쉽게 결정하고 매듭짓는 일들을 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고민에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레위인의 회막 봉사 입참 나이를,
30세 이상으로...(3절)
라고 정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 보았다.
싸움에 나갈만한 이스라엘 자손보다, 10년을 늦게 잡으셨다.
무엇을 근거로, 20세와 30세의 차이를 두신 걸까?
하나님은, 싸움을 잘 싸울 수 있는 팔팔한 소년 보다는
하나님의 대신 싸워주심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청년에게
성소의 직무를 맡기고 싶으셨을 것 아닐까 싶다.
생소한 회막일을 처음 맡은 20세라면,
성물에 손을 대고 싶은 호기심도 많았겠지만,
생후 1개월부터 30년간 하나님 일에 준비된 레위인에게는,
몸에 베인 절제가 있었을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이고 싶은가?
늦게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부터 차근차근 준비된 성숙한 레위인이 되고 싶다.
나의 대제사장이신 주님께서, 일을 완전히 필하신 후,
내 차례를 알려 주실 때까지 기다리겠다.
주님이 나오셔서 말씀하시면, 그 때 일어나서 멜 것이다.
궁금해도, 답답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환경과 사람을, 내 손으로 만지지 않도록 절제하겠다.
고핫자손의 직무는, <기다림>에서 시작되었음을 명심하며...
하나님은, 왜 이토록 답답하고도 무거운 직무를 고핫자손에게 주셨을까?
죽을까 하노라...(15절)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19절)
살려주시려고 그러셨다.
그 하나님이 내게도 새로운 구원을 허락하실 것을 믿는다.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말찌니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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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긴과보아스 17-05-18
- <민수기 4:18,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고핫 족속의 지파를 레위인 중에서 <끊어지게 말찌니>
그들이 지성물이 접근할 때에 그 생명을 보존하고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이같이 하여
레위의 세 아들들 고핫, 게르손, 그리고 므라리 자손중에
유독 고핫자손에게 무시무시한 경고 사항이 내린다.
지성물을 맡아야 하는 고핫자손의 책임이 참으로 중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고핫 자손이 끊어지지 않게,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을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신다.
마치 모세와 아론에게
“고핫 자손의 생명이 네게 달렸어!” 하고 말씀하시는것 같다.
내가 만일 모세와 아론의 입장이라면
이 얼마나 숨 막히는 job description 인가?
사고가 날까봐 모세와 아론이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까?
누군가가 부주위로 인해 죽을때마다
모세와 아론의 마음에는 바위 하나 올려 놓은것 같았을까?
이미 두 아들을 잃고 난 아론의 마음은 얼마나 더 부담이 되었을까?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을 가슴에 끌어 안으며 감당해야 하는 것이
그들이 가야 할 길이다.
오늘 자꾸 모세와 아론, 특히 아론의 마음을 묵상하게 된다.
부주의한 사고로 인해 두 아들을 잃은 아론이
이 지시를 받으면서 마음이 어땠을까?
이미 두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비로서
남의 생명을 보존키 위해 지켜야하는 자신의 위치를 피하고 싶었을까?
아님, 더 이상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 위해
더 정신을 차리고 충실히 임했을까?
육신의 죽음을 육신의 것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때
나는 감히 아론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내게 허락해 주신 공동체식구들의 영이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열변을 토하지만 많은 경우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믿음의 길들이 훤히 보임에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지만
힘든 고비만 넘기면 더 이상 하나님의 지시를 듣기를 원치 않는다.
그럴때마다 하던것 다 포기하고
굳이 애굽으로 돌아가지는 않을지라도
그대로 멈추어 서고 싶을때가 많다.
며칠 내내 계속해서 묵상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자 되심> 이다.
모세와 아론의 위치가 그들의 선택이 아닌것 같이,
내게 맡겨 주신 일들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명령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명하신대로 순종한 것 같이
나도 안되는 부분들은 그냥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범위에서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하자.
내 힘으로 하려다가 힘들다고 내려 놓지 말고
어렵고 힘든 것들은 하나님께 인정하고 내려 놓아야 겠다.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한 나답과 아비후처럼 열매 없는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불, 원망의 말로 불 지피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두 아들을 잃은 아픔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을
묵묵함으로 견뎌내는 아론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오늘도 허락 하시는 건강, 마음만큼 달려가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