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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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법칙과 나답, 아비후 - 민 26;52-65
- 야긴과보아스
-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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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은 땅을 분배받지 않는 데도 계수되어진다.
옛날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다른 지파들에게는
“땅” 이라는 현실로 눈 앞에 드러나듯이,
레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기업되심 또한
땅만큼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것 같다.
나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은 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기업이 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걱정되는게 많은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괜히 내 자신이 작아지는 것은 아닌지,
사람앞에서 위축되어 살아야만 하는것은 아닌지
불안해지는 것오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고
모든 소유가 하나님것임을 믿으면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은근히 걱정해왔던것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없음을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나아가기로 다짐하게 하신다.
세상 어디에서 이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61절에 엉뚱한 듯 끼워져 있는
나답과 아비후의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다른 불을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꾸준히 눈이 고정되어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1:29:300 원리이다.
330건의 사고를 분석하면 1건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29건의 위험한 사고가 있었고,
그리고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큰 사고가 날 뻔했던 300건의 경미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한 보험사 통계사가 발견한 이론이다.
결국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밝힌 것으로,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을 보면서
하인리히 법칙을 생각해 보았다.
단 한 번의 실수 가지고 그렇게 심하게 해도 되시는가?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소홀해졌고
하나님 말씀을 경홀히 여긴 것이 한 번의 일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삶속에 여러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일상의 삶속에서 작은 것들을 무시하고 방치하면
언제든지 영적 사고를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하루 하루의 삶속에서
나도 모르게 반복되고 자행되는 29번의 사건들
300개의 사건들이 무시하고 지나치는 어리석음이 되지 않도록
더욱 깨어 있고 경계의 삶을 살도록 하시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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