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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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8일-창세기 1장 통독 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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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창조의 하나님(찬358, 32)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이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 을 향한 이스라엘의 사랑과 충성을 무너뜨리는 거짓 신에 대한 숭배로 온통 물들어 있던 때였습니다. 그 신들은 해, 달, 별, 동물, 강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의 창조 기사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창조물들임을 말해줍니다. 그 신들은 죽은 거짓 신들이고 이스라엘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의 절대 주권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셨 다면, 사람이 따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얼마나 어리 석은 행동일까요? 

이 천지창조 기사는 율법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 지 말고….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라는 십계명의 기초는 다 이 창조 기사 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한 날을 구별하여 안식하고 거룩하게 하셨다면 그 백성들도 그 날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은 즉각적으로 이 말씀이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고, 모든 피 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존재하게 된 것처럼, 그들도 그 말씀 앞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로 창조기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절대 충성을 요구합 니다. 

인간은 독특하게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는 거룩한 계획에 의해(“우리가 사람을 만 들자”) 거룩한 틀에 따라(“우리의 형상을 따라”) 그리고 거룩한 목적에 의해 (“다스리자”)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구별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적 속성을 반영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신학자 폰 라드의 말처럼, “마치 왕이 자신이 다스리는 울타리 안에 자신의 주권적 통치를 보여주기 위해 동상을 세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자신의 대표자를 세우셨습니다.” 일곱째 날의 안식은 사실, ‘고된 노동으로부터의 쉼’ 보다는 ‘완성’의 의미를 가집니다. 성취의 즐거움, 완성의 축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지쳐서 쉬시는 것 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창조 행위에 만족하시며 그것을 경축하고 즐거 워하시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과 교제와 사귐을 가지기 위하여 제정하신 특별한 수단이라는 것도 이 안식일이 가지 는 특별한 의미입니다. 

1장에 기록된 창조와 창조세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반복되는 표현

이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온전하게 반영된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 러므로 인간을 비롯한 창조세계 전체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과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절대충성을 요구합니다. 그 절대충성은 하나님께 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모든 창조계가 다 그 창조의 말씀 앞에 순종했듯이, 우리도 순종해야 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오늘 이 말씀이야말로 새로 시작하는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말씀이 되기에 너무나 적합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깊은 묵상을 위한 몇 가지 질문>

1.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 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1) 창세기 첫 장 처음 말씀(1:1)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씀입니다. 그 러나 창세기 마지막 장 마지막 말씀(50:26)은 상대적으로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50장 26절 말씀을 찾아서 읽어보세요.

  2) 창세기 1장 1절은 ‘창조’와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창세기 50장 26절은 ‘죽음’과 ‘소멸’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와 생명으로 시작한 창 세기 말씀이 왜 죽음과 소멸로 끝을 맺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 십시오. 

2. 창1:1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언입니다. 온 땅이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계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이 하나 도 없습니다. 여기서 “태초에”라는 것은 시간의 시작을 말합니다. 시간조차도 하 나님의 창조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창조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세요?

 

  * 여기서 “날”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하루(day)라는 개념도 되지만 시대 (period)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을 찾아보세요. 그것들이 의 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가라사대”“그대로 되었더라”         ② 보시기에 좋았더라

  3) 하나님의 창조의 핵심은 사람들의 창조에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할 때의 중요 한 특징들을 읽으면서 살펴보세요? (26절, 27절, 28절)

3.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4. 창조의 사건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요1:1-4을 읽고 생각해 보십시오.

5. “그 종류대로”라는 말과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말은 동물과 인간의 차이 를 밝히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6. 인간의 타락은 창1:27-28의 상실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과 그 권세의 상실입니다. 동시에 에덴동산에서의 축복도 다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 john 18-01-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모든 신앙인들에게 대단히 익숙할 이 말씀,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도 자주 읽고, 듣고, 묵상했던 이 말씀이
      오늘 다시 한 번 내 마음 가운데 새로운 은혜로 다가온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유효하지 않았을 그 때, 하나님께서 계셨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기에 모든 것이 온전했다. 모든 것에 생명이 있고, 평안하며, 만족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떠나가면 그곳에는 죄와 죽음, 불신만이 남는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러한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왕 되시지 않는 곳에는 참 된 생명이 없다. 참 된 평안과 만족이 없다.

      나의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하나님이 아닌, 내 자아가 왕 노릇 하는 나의 모습에는 언제나 불평과 원망, 미움, 교만, 거짓, 정욕이 가득하다.
      끊어내려 할수록 더욱 끈질기게 나를 옭아매는 죄의 유혹이 오늘도 나를 절망 가운데 몰아넣는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기에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시며 깨닫게 하신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지으신 하나님, 모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께서 온전히 나를 다스리실 때 내 안에 여전히 남은 옛 자아가 소멸되고
      기쁨과 감사, 생명과 소망, 믿음과 사랑이 샘솟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내 안에 나를 비우고,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히 주관하시기를 사모한다.
       
      왕이신 하나님!
      내 마음 가운데 좌정하사 다스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