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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창세기 12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20
- 525 회
- 1 건
12장 약속—축복이 시작되다
아브라함은 셈의 자손이고 데라의 아들입니다.
데라는 비옥한 초승달 지 역의 건너편에서 이방신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수24:2).
그러나 창 31:53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나홀(데라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할아버지)이
참된 하나님을 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마도 셈의 후 손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그 가계 안에 유지되고 있었지만
데라때 에 이방신을 섬기는 일이 우세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에 하나님 께서 말씀하심으로써 가족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란으로 이주하였 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후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약속 의 땅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땅, 새로운 민족,
그리 고 개인적인 위대함을 약속해주시면서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약속들은 일차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만
궁 극적으로 이스라엘과 땅 위의 모든 족속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 약 속 가운데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는 말에서
앞의 저주와 뒤의 저주가 다른 단어입니다.
앞의 저주라는 말은 ‘소홀히 여기 다, 깔보다, 함부로 말하다’ 혹은 ‘저주하다’라는 뜻이고,
뒤의 저주는 말 그대로 강한 저주를 의미합니다.
즉, 누구든지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축복의 자리에서 제거되리라는 것입니 다.
결국 땅의 모든 족속의 축복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이 구원을 받고 심판 을 받을 것을 의미합니다.
이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복 안 에 들어오게 될 때 완성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본질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타락한 인류 가운 데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시작이고, 완성 을 약속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부르심의 의미요,
오늘날 교회도 이 부르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기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은 순종임을 보여줍니다.
1~5절 사이에 ‘가다’ 혹은 ‘떠나다’라는 동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것들이 다 믿음은 행동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강조점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
이것은 노아가 보여주었던 순종을 생 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살이었다는 점도 그의 순종의 가치를 더해줍 니다.
그는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 람들’을 이끌고 갔습니다(5).
아마 ‘얻은 사람들’이란
이미 하란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증거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얻은 개종자들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람들’이 노예를 의미하지 않으며,
자녀들을 의미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습니다(6).
히브리어 ‘모 레’는 선생을 의미하는데
어쩌면 이 장소는 고대에 가르침이 베풀어지던 고대의 사원이거나
가나안 제사장들이 신탁을 선언하던 장소나 그 나무일 수도 있습니다.
즉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도착 하게 된 곳은
바로 이방 이교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고 기록합니다(6).
앞의 창세기 기록에서 가나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의 세력으로 등 장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땅은 바로 이교들의 땅이었고,
그의 믿음은 끊임없이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임 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와 흡사한 상황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에 대해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나타내심으로 응 답하셨습니다(7).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예배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표현은 창4:26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8).
이 표현이 다른 구약 성경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마틴 루터는 ‘설교하다’로 이것을 번역했고
이것은 문맥의 의미를 잘 전달하는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최초 사건은 11장의 바벨론에서처럼
자기 이름을 높이려 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불명예스런 이름을 얻게 되지만,
믿음의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높 이실 것을 교훈합니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20).
땅에 기근이 들어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옮겨갔습니다.
여기서 ‘거루하려고’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 니라
한시적으로 머문다는 의미입니다(10).
이 행위 자체는 불신앙인지, 신앙적인지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에 대 한 믿음없음의 행동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마도 자기 생명을 보존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내 사래에게 그곳의 왕이 아내를 원하게 되 면 누이라고 속일 것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바로는 사래를 원하게 되었고 아브라함은 사래 대신에 많은 선물을 바로로부터 보상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깨어질 위기에서 행동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 여줍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고,
바로로 하 여금 사래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결국 바로에게 거 짓말에 대한 책망을 받은 후 애굽에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누구 도 그것을 망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무익한 것이었 습니다.
아브라함의 계교와 거짓말도,
바로의 절대권력도 하나님의 계획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실 것이고,
때가 차면 아들을 보내사 그 구원의 축복을 모든 민족 가운데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핵심포인트!!!!!
1. 왜 사래를 바로에게서 구원하셨는가? 창12;3절을 참고하세요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할 것
택한 아브라함에게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대 적이기에 하나님과 인간의 신인동형론적 개념
2. 아브라함의 믿음 업그레이드 1
아브라함의 계교와 거짓말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 을 알았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이 사건 이후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한 단계 엎그레이드 되어가는지를 살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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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1-21
- 1월 20일(토)
창세기 12장: 바치는 삶이 되기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 (창 12:7~8)
행하는 것이 항상 악한 것뿐이었던 인류의 계속 되는 실패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신실로 또 한 사람의 모델을 찾아내신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아브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향해 갔다.
그의 나이 일흔 다섯,
지금보다 수명이 길었을 때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삶의 터전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믿음의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자신을 바쳤다.
제단을 쌓았다는 말씀을 새번역에서 보면 ‘제단을 쌓아 바쳤다.’라고 나온다.
아브람의 삶은 이렇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삶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물질, 시간, 열정, 그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렇게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다.
오늘 아브람의 모습을 묵상하는 가운데
또다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쳤는가?
하나님께 드리기보다 받기만을 원하고,
주신 것에 감사하기보다 없는 것으로 불평만을 일삼지는 않았는지…
아브람과 같이
나의 삶 전부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내가 되기를 꿈꾸며,
작은 것 하나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결단을 올려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