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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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창22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2-01
  • 539 회
  • 2 건
22장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종종 성도들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포기하도록 요구하심으로써 
그들의 신실함을 시험하십니다. 
이것이 창세기 22장 본문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삭이 아브라 함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상기하게 하십니다(2). 
사랑하는 아들 독자!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출발을 했는데(3), 
이것은 이스마엘을 내어보낼 때 순종했던 것과 동일합니다(21:14).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산은 나중에 성전이 세워지게 될 예루살렘의 산입니 다(대하3:1). 
아브라함은 이미 앞서서 이스마엘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면 죽음을 의미했을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삭도 내려놓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 나님이 최고의 적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통해서 가르 치는 주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라면, 
가장 적절한 내용입니다. 

크렌쇼(James L. Crenshaw)의 말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상태로 외로이 걷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쁜 것은 여호와께서 가장 악한 대적임을 발견하는 것입니 다.” 
신실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을 믿고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립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딜레마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미래 를 계획하고 계셨는데,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에 있습니다. 
여기서 믿 음이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불합리하고 납득할 수 없는 요구를 명백하게 하실 때,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하 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썼 습니다(히11:19). 
그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대체할 동물이 있는지 주위를 둘 러보거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를 기다리면서 주저주저했다는 표현은 어 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입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좌우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는 기도로 하늘 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시련을 주시는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심을 알았다. 
그는 어떠한 희생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시면 힘들 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예배자는 사랑과 애정과 존경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그런 엄 숙한 신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리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의 믿음의 순종에 수양을 준비하심으로써 맞이하셨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시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요구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양보하는 일에 이교도들(가나안에 사는)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있습니다(델리취).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물을 준비하신다는 것의 핵심 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 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제물로 제공하신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간이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게 하십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아끼지 않는 신실함을 드러내도록 요구 를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가장 귀한 것을 아끼지 않으심을 보여주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독자를 아끼지 않고 내 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지 못하실 것, 아끼실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롬8:32). 

이것을 신뢰하는 성도들은 자기의 가장 귀한 것 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 여 당신의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해주십니다. 

22장의 뒷 부분에 소개되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족보는 
앞으로 전개 될 이삭의 이야기에 중요한 인물인 리브가를 소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홀은 아내 밀가를 통해서 여덟 아들을 얻었고 첩을 통해서 네 아들을 얻었습니다. 
밀가의 아들 중 브두엘은 리브가의 아버지였고, 
이제 아브라 함은 자기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삭을 통해서 
장래의 계획을 이어가실지를 확신하게 됩니다. 
    • 다니엘 18-02-02
      그일 후에
      창세기 22장 1-8절 묵상

      그 일 후에(22;1)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
      그 동안 어렵게 지내던 그랄 왕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어 블레셋 땅인 브엘세바를 얻게 되었고,
      거기에서 평안히 여러 해를 지나게 된때.
      하갈과 사라 사이의 갈등의 문제도 해결.
      이스마엘도 정리.
      이삭을 통해 위로받고 이삭을 향한 마음이 깊어졌을 때.
      바로 그때 가정 어려운 시험이 임했다.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드리라 하셨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골고다에서 죽일 사건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이삭을 드려 믿음과 순종의 삶의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경험했던것처럼
      내 삶속에서 믿음의 말씀의 순종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의 예비하신 역사를 드러내는 예표가 되는 일이라면
      내 몸짓이 얼마나 심각하고 큰 일이 될 수 있는가 싶다.

      창세기 22장에 세 가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명령과 순종,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어느날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에 있는 지시하는 한 산에 번제로 드리라하셨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몰입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 밀접한 관계가 문제였을까?
      이삭과 하나님중에 누가 더 귀중한 존재인가?
      하나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라 했다.

      나는 이 명령이 아브라함을 12장부터 21장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을 다듬으시고 믿음의 훈련과정을 시키신 후의
      최종 모의고사와 같은 것으로 보여진다.
      나 여호와를 얼마나 믿고 신뢰하는가?
      그 정도 나를 경험했으면 내 의도를 알겠지 라는.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내려치려 할때에 멈추게 하시고
      이제야 네가 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는 표현은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네가 정말 나를 믿는구나.
      네가 정말 내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구나 로 읽혀진다.

      아브라함의 순종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의 순종은 놀랍다.
      즉각적인 순종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순종을 시작했다.

      내 삶속에서 믿음의 선언이후에 실패한 경우 대부분은
      고민하고 지체하다 생긴 일들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다.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것은
      히브리서는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 했다.
      살리실 것이 믿어지면 드릴 수 있는거다.
      아브라함에게는 부활신앙이 있었던거다.
      그리고 히11;17절은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 했다.

      부활이 믿겨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확이되면
      기꺼이 죽음의 자리에도 나갈 수 있는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했다.
      주셨다가 빼앗기는 느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대했다면 순종은 못할 일이다.
      사랑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무궁한 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있습니까 라고 물을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리라 한 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개입하셔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리라고 믿고 대답한 것 아닐까 싶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대답을 아신다는 것.

      내가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은 하나님이시다.
      매 순간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나 역시 좋은 성품을 가져야 함을 깨닫는다.

      아브라함이 참 크게 보이는 것은,
      이삭을 향한 아버지로서, 인간적 사랑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논리적 모순을 잘 극복했다는 것이다.
      이삭을 통해 많은 자손을 주신다 했으면서 죽이시려는 모순사이에서
      아브라함은 따지는 방식이 아니라
      순종의 방식으로 믿음의 가치와 방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이 말씀이 가슴에 깊이 울림이 된다. 내 안네 이 믿음이 있는가?

      아브라함의 평안의 때에 시험왔듯이
      내 삶속에 모든 것이 평안하다 할때에
      이제 다 되었다 싶을 때
      시험이 오기 쉽다는 것.

      모든 것이 안정되고 좋을 때
       더 이상 기도할 것도 없어 보이고
      더 이상 성경 보지 않아도 되고
      그럴 때 시험이 올 수 있음을 알게 하신다.

      그리고
      나를 부르신 12장과 22장 사이에서
      나는 지금쯤 어디에 서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야 네가 나 여호와를 사랑하는지 알겠다고 선언하심을 들을 날이 올까?
    • john 18-02-02
      창세기 22장: 믿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8)

      백세에 주신 아들을 다시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것도 번제로 드리라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아무리 하나님이시지만 너무하신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줬다가 뺏는 것처럼 야속한 것도 없다고, 아브라함의 마음도 이러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한다.
      그에게 도대체 어떠한 힘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던 중에
      ‘아, 믿음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믿음.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자신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
      생각지도 못할 방법으로 주신 아들을 또다시 생각지도 못할 방법으로 데려가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과 자신의 언약이 유효하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이삭을 바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믿음이 없어서가 아닌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하시며, 나의 길을 가장 잘 아신다는 믿음.
      하나님만 바라며 그 뜻을 이루는 삶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임을 인정하는 믿음.
      이 믿음이 나에게 없기에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말씀 가운데 나를 위로하시고 힘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가능하고,
      예배하는 것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심을 믿을 때 가능하고,
      선을 행하는 것도 나를 통해 이 세상 가운데 맛을 내고 빛을 비추어 가신다는 것을 믿을 때 가능한 일이다.
      오직 믿음만이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오늘, 나의 믿음 없음을 돌아보며
      믿음만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날마다 굳건한 믿음으로 세움 받아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