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13-창32장 통독 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2-13
- 530 회
- 1 건
32장 자신이 꺾여야 믿음이 선다
한 사람의 적인 라반을 뒤로 한 야곱은
이제 또 한 사람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에서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풀어가는 야곱의 방법은
형 에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의 해결은
사람의 계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야곱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서 온다는 것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뒤와 앞에 각각 적을 두고 있는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는 경험은 놀랍습니다(1).
야곱은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 부르고
마하나임이라고 그 땅 이름을 지었습니다(2).
하나님은 이 위기의 순간에 야곱과 함께 한 하나님의 군대는
어느 적군 보다 강하다는 것을 야곱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자기를 맞으러 온다는 소식에 자기의 소유를 두 떼로 나눕니다(7).
본문에서 보는 야곱의 믿음은
아직도 여전히 그의 교활한 술책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비록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지만,
두려움과 죄책감이 매 순간 그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형을 물질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매수하려고 합니다(20).
야곱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기 힘으로 위기를 해결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수많은 위기와 갈등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물리적인 방어,
또한 아무리 많은 돈도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치 않은 경우를 만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에게 확신이 찾아오는 방식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이렇게 될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떤 위험이 닥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십니다.
결국 모든 소유와 가족이 먼저 강을 건너게 하고
홀로 남은 야곱은 그를 찾아온 어떤 사람과 씨름을 벌이게 됩니다(24).
이것은 물론 야곱의 끈질긴 기도를 의미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육체적 씨름이임을 보여줍니다.
마치 아브라함이나 롯을 찾아간 천사들처럼
야곱은 천사를 만나 씨름을 벌였습니다.
야곱은 이 씨름에서 고관절(환도뼈)에 타격을 입고 골절을 당하게 됩니다.
야곱은 날이 새려 하고 천사가 떠나려고 하자 축복을 요구합니다.
천사는 야곱이란 옛 이름대신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줍니다.
이것은 야곱의 본성의 변화를 상징하는 축복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싸우시다 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지만,
매우 모호한 단어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온 세상과 필요하다면 하나님과도 싸울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씨름의 영적 의미는 야곱의 모든 저급한 가치들이
보다 고귀한 요소들에 의해서 일격을 당하고 패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리를 저는 승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발버둥치는 것이 소용없는
어떤 분의 손에 붙잡힌 것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는 자연적인 힘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믿음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이 사건은 약속을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파멸에 이를 만큼 교활한 야곱에 대한
도덕적 심판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일어났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회복은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백성을 위해서 싸우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슥4:6).
하나님의 축복은 교활함이나 육체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롭고 강력한 섭리를 통해서 옵니다.
하나님은 가끔 자기 종의 능력을 무력화시켜
그들이 믿음으로만 축복을 받아 누리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야곱을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의 자신감이 소용없다는 것을 증명하시는 자리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십니다
창세기 32장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 32:30)
집을 떠나올 때부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야곱은
실제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자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왔다.
하지만 라반을 떠나올 때도, 에서를 만나러 갈 때도 여전히 그의 속에는 근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던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근심이 그의 행동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라반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틈을 타서 라반의 곁을 떠났던 일이나,
에서를 만나기 전 많은 선물을 보내 그의 마음을 사려고 했던 일들.
하나님께서 도우시겠다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리고 실제로 자신과 함께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지만
그는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두려움과 근심을 떨쳐보려 힘쓰고 애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야곱을 향해 손짓하시며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하신다.
에서를 만나기 전,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시며 새 이름을 허락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너의 뜻을 따라, 너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을 따라, 나의 힘을 의지하여 사는 새 삶을 요청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누렸던 야곱, 즉 이스라엘은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도우신, 나와 함께하신, 나를 살리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계속되는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야곱의 모습이 어찌 그리 내 모습과 닮았는지 놀랄 때가 많다.
내 유익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속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의심하며 불신하고,
하나님의 방법보다 내 방법을 더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에
나의 이러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나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한없는 은혜를 주신다.
수도 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신했던 나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서도 여전히 내 경험이나 지식, 내 의지를 더 기대하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그 거룩한 얼굴을 나에게 보이셨다.
그리고 나에게 힘과 위로를 더하셨다.
늘 나와 함께하시며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그리고 무엇보다 마땅히 죽어야 함에도 나를 살리신 하나님.
하나님의 그 은혜를 다시 한 번 묵상하면서,
여전히 나를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만을 기대하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