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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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창세기34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2-15
- 542 회
- 1 건
34장 세상의 악에 대처하는 신앙적 방법
창세기 34장 이야기는 야곱과 그의 가정이 정착한 가나안의 세겜에서
디나가 그곳의 추장 하몰의 아들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복수로 시므온과 레위가 거짓 조약을 맺어
그 남자들을 다 도륙하고 재산을 노략한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해 줍니다.
여기 나오는 중요한 개념들을 말하자면
더럽힘, 사악함, 할례와 비할례, 분노와 슬픔 그리고 기만에 관한 것입니다.
할례받지 않은 가나안 백성들의 부도덕함이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더럽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이스라엘은 어떻게 이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 이교도들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더럽혀짐을 초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디나를 강간한 후에도 하몰과 세겜은 어떤 잘못에 대한 뉘우침 보다는
그녀를 돈으로 사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그들의 부도덕함을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야곱이 보이는 반응은 이례적입니다.
야곱은 흥분하지 않으며 분노하지 않습니다.
만일 디나가 라헬의 딸이었을지라도 야곱이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만큼 행동합니다.
야곱은 족장으로서의 자신의 리더십을 포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형적인 남자의 비겁함으로, 아담의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오히려 분노함으로써 정당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야곱의 아들들이었습니다(7).
결국 하몰과의 협상 상대는 야곱 보다는 야곱의 아들들이 대신하게 되고,
미성숙한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라는 종교적 언약의 표시를 가지고 그들을 속이고
결국 세겜 남자들을 도륙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시므온과 레위에 의해서 저질러진 이 복수극은
비록 잘못된 일에 대한 정당한 분노라 할지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것은 언약 백성 공동체의 믿음을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하몰과 세겜이 자기 성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면서
이중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라는 종교적 의식을 이용하여 거짓말을 하고 도륙을 한 것은
언약 백성들에게 합당한 태도는 아닙니다.
결국 이 사건은 시므온과 레위를 장자의 서열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이교도의 더럽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단호하게 행동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미성숙한 이들은 잘못 인도된 열정으로 인해 언약을 모독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악과 세상의 더럽힘에 대해 정당하고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하며
성숙한 지도자들은 단호하게 행동할 책임이 있습니다.
무법이나 불법한 행동을 통해 악을 멸하거나 징벌하려는 시도가
정의로운 분노와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의인은 반드시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정의를 추구하고 악을 대적해야 합니다.
본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적절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바로 가나안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고 더럽힘을 당한
그런 교회의 형국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야곱처럼 하고 있지 않은가?
야곱의 죄는 가나안에서 가나안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하게 살아가려고 한 동기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시므온과 레위에게 분을 내면서 이제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책망합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동기를 가질 때 타락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미 편안함과 안일함으로 살려는 그런 면에서
세상에게 손가락질 당했고 더럽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면 타락한 어떤 존재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누가 과연 이런 형국에 처한 교회를 바라보면서 정당한 분노를 표출할 것이며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인가?
미성숙한 분노의 폭발 혹은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대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야곱의 죄에 너무나 많은 지도자들이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편, 야곱은 세겜에 머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과 서원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전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그곳에서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벧엘이 세겜이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마땅히 머물러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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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2-16
-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창 33:14)
레아가 야곱에게서 나은 딸 디나가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디나의 아버지 야곱은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절대로 자기 자신은 피해를 안 보려고 하는 지금까지의 야곱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행보가 아닌가 싶다.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 엄청난 범죄에 대한 야곱의 소극적인 대처가 결국 더 큰 죄악을 낳았다는 것이다.
야곱의 불분명한 태도로 인해, 그의 아들들은 누이의 일을 복수하고자 히위 족속을 몰살시켰다.
그것도 그들을 속이는 비열한 방법으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 단호하지 않은 태도가 얼마나 큰 불행을 낳는가를 깨닫게 된다.
물론 죄인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긍휼히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죄, 불의 자체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한 태도로 그것을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그 가문의 처음 딸이었던 디나는 한 이방인의 정욕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이러한 불의에 대하여 야곱이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면,
아마 그의 아들들이 한 족속을 몰살시키는 더 큰 악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을 멸하라 하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계이자, 또한 영적 전투를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았음에도 인간적인 분노로 한 족속을 멸절한 오늘의 이 사건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악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죄악의 발단은 야곱의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 그 땅의 원주민들과 불화하고 싶지 않았을까?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불의에 대해 단호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본다.
물론 나부터도 죄를 드러내면, 불의를 짚어내면 불편하고 거슬리는 일이 많기에
알고도 모른 척, 보고도 못 본 척 할 때가 참으로 많았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불의에 대해 미온적인 나의 태도가 더 큰 죄로, 더 큰 불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장은 편하고 쉬운 길이 될 수 있겠지만, 그 결국은 더 큰 불의의 열매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아주 작은 죄의 습성이라도, 아주 작은 불의라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믿음의 자세로
늘 의의 열매를 맺어가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