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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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러는 거 아니다 - 에스겔 4;1-17
- 느헤미야강
- 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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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7(목) 말씀큐티와 영성일기
에스겔 4;1-17
에스겔은 하나님게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그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시청각교육을 행한다.
왼쪽으로 누워 390일동안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하게 하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40일동안 유다의 죄악을 담당하게 하셨다.
생명의 삶 큐티 제목이
‘행동으로 삶으로 말씀을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잡았다.
참 멋진 제목이다.
어떻게 그렇게 잡았지?
그런데 참 그런게 있다.
당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라 하면
고개를 끄떡일 게다.
그런데 행동, 삶으로 말씀을 보이는 것이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비웃고 미쳤다고 할게 뻔한 모습으로 말씀을 보여주라?
난 그렇게 못한다. 못할게 뻔하다.
그런데 조금 충격이다.
그동안은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것만이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 제목을 생각하면서 묵상을 하고나니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
말씀일 이루어 드리는 삶이,
내가 보기에 멋지고 그럴싸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동으로 삶으로 말씀을 보여주십시오!
그것이 이해안되고 창피하고 죽기보다 싫은것이라 할지라도
말씀하시니 감당하는 에스겔을 보며 그게 순종이지.
그게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게 무엇이든지
살아내는 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지,
나 보고 하나님 보는 것만 같애.
나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틀림없어.
정말 그리스도인이구나.
그런데 그것만이 아님을 알게 하신다.
그것만이 아니구나.
말씀을 더 넓게 확장시키시는 은혜을 경험한다.
참 다른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니
그리 했을거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오늘도 내게 성경으로, 양심으로, 깨달음으로,
각양 각색의 사건과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몸짓으로도 말씀하고 계시는데
나는 하나님 얼굴 못보았으니
내 귀에 직접 대놓고 말씀하심이 없었으니
못 들었다고,
그래서 나는 못한다고 하는 어리석음은 없는지
그런생각이 든다.
부끄러워서일게다.
오늘 묵상중에 유난히 가슴에 파고드는 한 구절이 있다.
16절,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의뢰하는 양식’이라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뢰함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것에 이스라엘이 의뢰했다는 말씀이다.
돈도 능력도, 건강도 지능도 모든 환경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만을 의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나도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에 치중하면 보이는 것에만 마음 쏟으면
어느날 하나님의 준엄한 책망을 면할 길이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
.
.
오늘 일대일 두 번째 시간.
죄의 삯은 사망.
죄를 지었으면 살아날 길은 오직 하나이다.
죄지은 내가 죽는것!
내가 죄 짓고 내가 죽으면
모든 인간이 죄 지었으니 다 죽으면
하나님께 남는게 뭐가 있을까?
나를 위해 친히 아들을 제물삼아
십자가 제단에 죽게 하심으로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대신 죽음으로
나를 살리셨으니
그 보다 더한 사랑은 없는데...
오늘도 그 하나님보다
세상을, 물질을, 있다가 없어지고 말것에
더 목숨거는 인생.
받은 사랑 알면 그렇게는 못하지.
받은 사랑 모르니 그러는 게지.
너 그러는거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너 그러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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