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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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눈이 어두우면 - 에스겔 11;1-13
- 새생명
-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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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5(금) 큐티본문 말씀
지도자의 눈이 어두우면 공동체가 길을 잃습니다.
에스겔11;1-13
1 그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서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그 문에 사람이 스물다섯 명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고관이라
2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 중에서 악한 꾀를 꾸미는 자니라
3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
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그들을 쳐서 예언하고 예언할지니라
5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6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도다
7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죽인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인데 너희는 그 가운데에서 끌려 나오리라
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 내가 칼로 너희에게 이르게 하고
9 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에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넘겨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10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심판하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1 이 성읍은 너희 가마가 되지 아니하고 너희는 그 가운데에 고기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너희를 이스라엘 변경에서 심판하리니
12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너희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13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
본문이해
에스겔 11장은 유다심판의 마지막장입니다.
본문에는 25인에 대한 지도자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에 두 사람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소개합니다. 아마 25인중에 두드러진 지도자의 역할을 하였거나 가장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들은 귀족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어떤 사람인지 성경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는 어느정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8;1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로 소개되어 있는데 하나냐와 야아사냐는 형제정도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냐는 선지자였는데 거짓선지자였습니다.
‘유다는 망하지 않는다. 형제중 몇 사람은 포로로 끌려갔지만 이 어려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예언 메시지였습니다.
이 말은 희망적인 것 같지만 예레미야는 오히려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거짓선지자입니다.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잘 못 해석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이니 절대 망하지 않을것이라 낙관했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적용할 수 있도록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2절은 불의, 악한 꾀를 베푸는 자로 소개하고 있고,
3,4절은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는 말은 고기가 가마속에 있듯이 안전하다는 표현입니다.
집을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않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렘29;5은 바벨론 포로된 기간이 길 것이니 그곳에서 집을 짓고 거하며 열매를 먹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귀족들은 지금 위기가 아니니 그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귀족들의 죄를 12절,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다고 선언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가장 흥분하시며 유다 왕국을 책망하신 일은 지도자의 삶이
이방인의 삶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과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분명해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답게 삶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져야 합니다.
결국 블라댜가 죽음으로 이 심판이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거짓 선지자이자 귀족인 블라댜의 죽음은 에스겔의 예언을 듣던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과 교훈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긍정의 힘’을 신봉하며 자기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태도는
그런의미에서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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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욱 15-09-25
- 삶은 계란? 삶은 해석?
도서관에 가 예배와 말씀을 준비할 요량으로 차를 운전했습니다.
성경과 컴퓨터와 몇권의 책들, 간단한 간식거리와 음료를 챙겨 갔습니다.
조금 늦으면 도서관에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서둘러야 합니다.
특히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콘센트가 있는 테이블은 한정적이라 자리다툼이 치열합니다.
도착한 도서관.
서둘러 파킹을 하고 도서관을 뛰다시피 합니다.
다행입니다. 아직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아싸! 쾌재를 부르며 자리 세팅을 합니다.
아~ 늘 너무 서두르면 빠트리는 것이 있습니다.
어제는 콘센트를 안 가져와 조금밖에 사용 못했는데, 오늘은 차에 물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두고 내렸습니다.
세팅을 끝내고 물과 간식을 챙기러 차로 향합니다.
아, 그런데 이게 뭔가요?
운전대 좌우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게 보입니다.
가을의 날씨와 공기가 너무 좋아 도서관에 올때 창문을 활짝 열고 온다는게 그만 올리는 것을 깜박한 것입니다.
근데 은혜가 되는것은 물과 간식거리를 처음부터 가지고 내렸다면 집에 돌아갈때까지 그러고 있었을거라는거...
깜박이도 은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삶은 계란이라고 하지만, 제게는 삶은 온통 은혜인것만 같습니다.
깜박 잊은 것을 멍청이라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할 수 있으니
제겐 삶은 해석이지 싶습니다.
본문을 보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것이 죄악때문이었음을 적어도 지도자라면 알았을텐데
여전히 과신하는 것 보면 참 안타깝다 싶습니다.
저만 깜박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똑같아 보입니다.
한 두 번은 이해하고 너그럽게 봐줄터이나 계속 반복되면 곤란한게 쉬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12절 그들의 삶이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다는 말씀이 사뭇 가슴에 다가옵니다.
이것이 유다 지도자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나의 문제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방인처럼 아들을 몰렉으로 드리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을 멸시해서만일까?
삶에서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 모르는 사람과 똑같고 행복과 가치기준이 말씀없는 이들과 똑같다면
그게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는 것이려니 생각해서입니다.
한 주간내내
그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가슴이 참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오늘에서야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받았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고 답답하면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그 역시 쉬 잊어버립니다.
세상은 답답함 앞에서 지혜와 분석을 통해 원인을 발견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먼저 나를 지으신 하나님,
오늘도 나를 다스리시고 이끄시는 부활하신 주님께,
내 안에 계셔서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먼저 여쭈어야 함에도 늘 한발짝 늦습니다.
오늘은 잊지 말고
하나님앞에 먼저 묻고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살아계신,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께 나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