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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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금) 여호수아 17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6-22
  • 513 회
  • 3 건
요셉의 둘째 에브라임의 기업 분배에 이어 므낫세의 기업분배에 대한 이 야기가 나옵니다. 
므낫세의 장손 마길은 요단 동편 땅, 길르앗과 바산에 서 미리 자신의 기업을 얻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0 분깃을 얻게 되는 데, 그렇게 분깃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신들도 기업을 다라고 요구했고, 모세가 그 요구를 수락했었기 때문입니다. 
므낫세의 자손들은 요단 동편에 이어 요단 서편에서도 땅을 분배받게 되 었습니다. 
그 영토는 주변에 여러지파와 접경을 이루는데, 
위로는 잇사 갈, 스블론, 아셀과 접경을 이루고 아래로는 에브라임과 접경을 이룹니 다. 
동편으로는 요단까지며 서편으로는 지중해까지 이르는 영토를 가지 게 됩니다. 

사실 이들이(에브라임과 므낫세) 이렇게 큰 영토를 가지게 된 것은 그들 이 다른 지파에 비해서 상당히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크기 에 비해 분배해 준 땅은 너무 적다고 느꼈기에 자신들에게는 한 분깃만 으로는 부족하다고 요청하게 됩니다. 
이에대해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땅 을 스스로 정복하여 취하라고 합니다. 
그 땅은 산지가 많고,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들이라 어려움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1. 요셉의 지파(므낫세와 에브라임)는 자신의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요구 가 있었습니다. 
슬로브앗의 딸들은 아들이 없는 자기 집안이지만 딸에게도 기업을 달라 는 요구를 했고, 모세는 이를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요구에 따라서 므낫세 지파는 요단 서편에서 10개의 분깃을 얻었습니다. 
요셉의 자손들은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의 규모에 비해서 땅의 분배가 너 무 작으니 더 큰 땅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런 불만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부정적인 의미의 욕심에 불과한 것인가? 정당한 테두리 안에서의 요구였는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슬로브앗의 딸들이 요구는 부당한 것에 대한 요구였으며, 그 요구 는 정당함을 인정받아 모세를 통해서 허락되었습니다. 
만일, 요셉 지파의 두 아들 지파의 요구를 정당하다고 본다면 어떤 의미 에서 그럴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필요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 요구 는 어느 정도 관철되어 허락되었지만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 이 나게 됩니다. 
개척이라는 수고가 있으나 요구가 반영되었다는 면에서 무조건 참지 말고 요구하는 삶도 필요하다는 관점에서는 그럴수 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 자신의 욕구를 정당하고 바르게 표출하는 것도 성숙함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욕심이 아니라 면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른 지파들이 다 땅을 분배받지 못한 상황에 서 조금 성급한 감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부족한 부분은 정복하고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가 요셉 지파의 적극적인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는 힘들었을 것 입니다. 
다른 지파와의 형성평 문제도 있으니. 슬로브핫의 딸들이 요구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모세가 수락한 것이기에 그대로 허락하였습니다. 
반면 요셉 자손들이 자신들에게 땅을 더 달라는 요구, 즉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큰 지파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들은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수락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정복하기 힘든 땅, 다른 지파들이 가지기에도 어려운 산지와 계곡이 있는 땅을 
그들에게 스스로 정복하여 가지라고 도 전했습니다. 
이제 공은 여호수아에게서 요셉의 자손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몫이 되 었습니다. 
얻을 땅이라는 것이 산지라면 큰 유익이 없을 수 있을 것입니 다. 
얻을 땅이 철병거를 가진 족속이라면 섣불리 덤벼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는 전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요셉 지파가 그 땅을 정복하든지 아니면 좁은 대로 살든지 결정하 고 행동할 일만 남은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정당한 요구, 다른 지파와 다른 룰을 적용해야 하는 대상들에 대해서 
무조건 관용하지도, 무조건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형평을 고려하면서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을 더해서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균형감도 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
    • 느헤미야강 18-06-22
      통독가이드와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을 함께 올려 놓습니다.
       
      본문 1-13절은, 요셉의 장자 므낫세지파의 땅 분배, 14-18절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지파가 땅을 더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14절,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여호수아는 땅분배시 유다지파를 제일먼저 그리고 열한번째 아들인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를... 두 번째, 세 번째 순으로 분배합니다.
      그러니 어느지파보다도 특권을 부여받은 셈입니다. 한 가정에 불과했던 야곱의 아들들이 한 민족을 누리게 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런 요셉을 대신하여 아들 둘이 지파를 형성하고 복받은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몫이 부족하니 땅을 더 달라고 합니다. 아직 7지파는 땅을 분배받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이미 받은 지파가 더 달라합니다. 요즘말로 참 어이가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습니다. 요셉가문의 사람입니다.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여호수아 친인척들입니다. 형들, 할아버지입니다.
      정복전쟁시 누구보다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제 몫을 누려야 할때에 가족, 일가친척들이 더 큰 몫을 달라고 합니다.
      개국공신들이 한 자리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수아의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처방이 놀랍습니다.“스스로 개척하라”(15절)
      가문, 형제, 가문의 어른들에게 휘둘리지 않았습니다.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누구보다 지지해주고 사랑하며 격려해주었을 사람들.
      그들의 요구앞에서 바른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
      어떻게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까요?
       
      여기까지 도우신 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 백성을 이곳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하신 분이 가족들, 친인척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르게 하신 분도 하나님, 내리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심을 알았기에 사람들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그런 여호수아였기에 요셉의 두 아들 지파에게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17;1절은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므낫세지파는 용사들이 많으니 갈렙처럼 지금 분배받은 땅이 조금 부족하다해도
      주변족속을 정복해서 자신의 땅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받은 축복, 특권은 기억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 부족한것만을 요구했습니다.
       
      요단동편에 이미 므낫세 반 지파가 땅을 차지하였고, 요단서편에도 세 번째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먼지 분배받았다는 것은 다른 지파에 비해 좋은 땅을 분배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인구수에 비례해서 땅을 분배했으니 넓은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거기에 아들 중심으로 땅을 분배받았던 당시에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도 땅을 분배할 수 있는 특별법까지 세웠으니 복받은 지파입니다.
       
      요셉지파의 아쉬움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복을 너무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미 받은 축복과 특권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아버지의 삶으로 주어진 특권을 잘 못 이해했습니다.
      받아야 할 몫, 누려야 할 가치로만 특권을 이해했습니다.
       
      갈렙은 누구보다도 누릴 특권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는 가장 좋은 땅을 요구하고 편안하게 차지할 수 있었으나 헤브론 산지를 요구하고 거주하는 아낙자손을 쫓아내 약속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요청하고 점령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마침내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달랐습니다. 누구보다도 특권을 가장 아름다운 모델로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 창조주가 인간이 되셨습니다.
      특권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죄인된 인간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40일 금식하신후 세 번에 걸친 사단의 유혹앞에 특권과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역시 특권을 유지하게 해 달라함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자기의 특권을 내려 놓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 그리하면 믿겠노라 조롱할때에도 나의 구원을 위해 특권을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특권을 오로지 온 인류를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므낫세는 이미 가장 탁월한 축복 특권을 받았지만 잘 못 오해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는 이 정도는 누려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누릴 것만을 계산했습니다.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어처구니!
      맷돌의 손잡이입니다. 맷돌을 돌리는데 손잡이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버렸을때 하는 말입니다.
       
      특권은 있는데 어떻게 사용할지를 모른다면 어처구니 없는 것 아닐까요?
      남보다 더 많은 지위나 권력, 명예, 소유를 주신 것은 사명때문입니다.
      영혼을 위해, 한 시대를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도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참된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실 때 그냥 보내시지 않으시고 사명 감당하라고 보내신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여호수아!
      멋진 여호수아!
    • john 18-06-23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수 17:12)

      므낫세 자손이 얻은 땅에도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안에 살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고
      이에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했다고 오늘 말씀은 이야기한다.
      므낫세 자손은 땅을 차지하는 일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고
      반면 가나안 족속은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들의 생업과 터전을 빼앗기는 일에
      누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게냐마는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었기에 므낫세 족속은
      더욱 힘써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냈어야 했다고 본다.

      그런데 내 안에 죄의 문제도 꼭 이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셨지만
      나는 때때로 내 안에 악한 마음, 그릇된 생각을 방치할 때가 많다.
      그것들을 힘써 쫓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정도 쯤은 누구나 가지는 생각이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합리화 한다.
      반면에 내 안에 있는 불의한 것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내 안에 거하려 한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했다고 한 것처럼
      내 안에 악한 모든 것들은 나에게서 떠나지 않으려고 단호하게 버티고 있다.

      내가 여전히 쫓아내지 못한 악한 생각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마음들,
      거룩하지 못하고 불의한 모든 요소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지금은 내가 더 세고 내가 그것들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이 나를 다스리게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악한 것들을 끈질기게 대적하고,
      악한 생각이, 마음이 들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그것을 내 안에서 쫓아내는 일이 오늘 나에게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아름답고 복된 터전으로 만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6-24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수17:16)"

      요셉의 자손들을 특별한 은혜를 받은 지파였다.
      그들도 스스로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다고 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고백 속에는 그러므로 자신들에게 더 많은 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할 논리적 근거가
      그 안에 숨어있기도 했다.
      여호수아도 이들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이 스스로 땅을 개척하여 기업을 삼을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여호수아의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산지는 넉넉한 곳이 아니었고 골짜기에 거주하는 거민들은 다 철병거를 가지고 있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이 산지를 개척하고 또 비록 강한 상대라 할지라도 능히 그들을 물리쳐서 자신들의 기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이들의 불평은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큰 민족을 이루었다면
      이러한 불평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들은 그들이 잘나서 혹은 탁월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복을 
      받게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나의 삶도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심으로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고 또 영광스럽게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다.
      이것은 나의 탁월함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된다.
      나는 오히려 죄악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모습을 보일 때도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이끌어 주셨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모습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음을 오늘 요셉의 자손들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내 안에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그 중 일부만 내가 드릴 수 있다고 생각되어 지는 것만을
      드렸음을 보게 된다.

      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는 믿음.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자격 없는 나에게 지금까지도 은혜를 베푸셨던 것 처럼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나를 통해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