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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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수) 삿3장 죄를 혀용하는 순간 주인노릇한다

  • 느헤미야강
  •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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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3장 
성도의 삶에 작은 죄라도 허용하는 즉시, 그 죄는 주인 노릇을 하려 한다.
 
여호수아를 통한 정복 이후에도 가나안의 이방민족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들을 남겨두셨다고 표현합니다. 
이들이 남겨둔 목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로 하여금 전쟁을 통해서 시험하고 이들이 정말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율법을 지키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확인하려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사기에서 보면 이스라엘 사이에 가나안 족속들이 사는 것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가나안 족속들이 사는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듯이 묘사하고 있습니다(5절) 
그만큼 가나안 족속의 영향력이 컸고,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작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들과 통혼하면서 그들의 신을 섬기면서 그들처럼 되어갔기 때문입니다.(6절)

3장에서는 세 명의 사사를 언급합니다.
첫 번째는 여호수아서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 옷니엘(수정: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입니다. 
옷니엘은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두 번째는 에훗입니다. 에훗은 베냐민 사람으로 왼손잡이(오른손을 못쓰는)입니다. 
그는 지혜를 발휘하여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고, 
에브라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원하여 모압의 용사들을 만 명이나 요단에서 죽이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세 번째 사사는 아낫의 아들 삼갈인데, 그는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옷니엘을 제외한 에훗이나 삼갈과 같은 사람은 뭔가 하자가 있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이 가나안 이방인들과 하는 전쟁은   물리적 전쟁이면서 영적 전쟁입니다.

초반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이 남겨 있는 것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남겨 둔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은 그들 가운데 거하면서 그들의 자녀들과 이스라엘 자녀들이 
서로 통혼 하고 그들의 신을 따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들과의 관계가 늘 전쟁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후에 보면 가나안의 여러 족종과 전쟁을 통해서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실재의 전쟁) 그와 같은 전쟁이전에는 매일 매 일의 일상적인 영적 전쟁이 있었음을 의미하고 
그 영적 전쟁에서는 매번 실패하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실존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세상적인 가치관들과 전쟁을 치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영적 전쟁을 우리는 모를 수 있습니다. 
세속화되어져 가고 있는 교회의 실상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통혼하면서 세상과 섞여 버리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바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외부적인 전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 영적 전쟁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2. 사사로 세워진 에훗과 삼갈의 특징 에훗은 베냐민 지파요 왼손잡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12아들 중 막내입니다. 가장 작은 지파입니다. 에훗은 왼손잡입니다. 
오른 손에 장애가 있어서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굳이 왼손잡이라고 쓴 것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에훗의 외부적 조건을 봤을 때, 남들보다 앞서는 조건은 없는 셈입니다.

삼갈도 마찬가지입니다.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을 죽인 것을 보면 
소모는 목동 출신으로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스라엘을 고통 속에서 구원해 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만 들어 쓰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연약한 자라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들어 쓰시는 분이십니다. 
핵심은 하나님은 조건과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들을 들어 쓰신다. 
하나님 스스로가 능력의 하나님시기에 누구를 들어 쓰셔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는 중에 에훗이 있고, 삼갈도 있음을 보십시오.
약한자만 들어 쓴다고 보면 <옷니엘>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었습니다. 강한자도 약한자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우리 가운데 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죄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가?(5절)

여호수아서를 볼 때는 이스라엘 가운데 다 멸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존재가 무력해 보였다.) 그러나 사사기를 보면 그들의 존재는 상당히 커집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고(5절) 
그들의 침략과 그들의 유혹에 무너지고 있는 연약한 이스라엘을 보게 되 기 때문입니다.(6절)
처음에 죄는 우리 가운데 약한 존재로 자리를 잡습니다. 
다리 한 쪽만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죄는 다른 쪽 다리도, 엉덩이도 몸통도 머리도 다 그 안으로 집어 넣고, 
결국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있게 됩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이 되고 마는 형국입니다. 
죄란 그렇습니다. 죄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죄를 막아내지 않고 허용하는 순간, 우리는 죄의 밥이 되고 맙니다.

오늘 하루도 죄에 관한 한 작은 것에도 민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john 18-07-05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의 섬겼더라” (삿3:6)

      가나안 원주민들과 섞여 살며 그들과 통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본보기로서의 사명을 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은 대로 그들과 섞여 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채 육신의 정욕을 따라 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을 떠나 그들의 신을 섬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이뤄야 할 사명보다
      당장 보기에 좋고, 당장 행하기에 편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섞였다. 섞여서는 안 되는 부류, 정복해야할 대상과 섞여버렸다.

      오늘 나의 삶에도 신앙과 세상적가치가 타협점을 찾으려 할 때가 있다. 
      요새 세상이 그러하니까, 이 곳 분위기는 다 그러하니까, 이렇게 안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세상과 나를 적당히 버무려서 보기에, 듣기에, 행하기에 편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게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기가 막힌 지 말씀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실패했지만
      오늘 나는 세상에 스며들어 보기 좋게 융화되는 것이 아닌
      세상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외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되기를 사모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7-05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삿3:10)"


      3장의 말씀을 보면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의 죄악과 징벌 그리고 사사를 통한 구원의 싸이클이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이방민족들과 서로 왕래하고 혼인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신을 섬기기 까지 하였다.
      이러한 죄악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남겨둔 자들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셨는데 그들의 어려움을 당한 후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다시 회복을 시켜 주셨다.

      오늘 10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웃니엘을 사사로 세울 실 때에 여호와의 영이 그와 함께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사사는 사람의 선택해서 세운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부워주심으로 세움 받았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세우셨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가 능히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이길 수 있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고 관심을 거두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성령을 주셨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보장해 주셨다.
      우리는 이제 그 성령을 따라 승리의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지 혹은 내 생각 대로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영을 부워주시는 인생 그리고 그와 함께 하사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인생을 살아가길 원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능히 감당하고 넉넉히 이기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