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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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금) 삼하1장 다윗의 애가
- 느헤미야강
- 2018-09-01
- 483 회
- 2 건
삼하1장 원수의 죽음 앞에서 애가를 부르는 마음
사무엘하는 사무엘상과 본래 나누어지지 않은 하나의 책이었지만,
6세기에 처음으로 인쇄업자에 의해서 두 책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사무엘하는 사울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다윗 왕정의 확립과 다윗의 마지막까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사무엘상 31장과
사무엘하 1장에 두 번 기록되어있는데,
사무엘상 31장이 하나님의 기록이라면,
사무엘하 1장에 나오는 아말렉 소년의 설명은
인간의 기록으로 이것은
그 소년의 진실됨이 없는 꾸민 기록입니다.
이 소년은 자기를 ‘아말렉 사람으로
외국인의 아들’이라고 말하는데,
외국인의 아들이라 함은 이스라엘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외국인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의 진실성도 매우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다윗은 그가 전하는 말의 상세한 부분을 믿지 않고
그를 처형하였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보고를 접하는
다윗의 마음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다윗의 태도는 사울은 다윗을 원수로 여겼으나,
다윗은 그를 원수로 여긴 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옷을 찢고 울며 금식하자,
그의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그리하였다는 것은
다윗의 태도가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 것이었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는지를 증거합니다.
다윗이 부른 애가는 ‘활의 노래’라고 알려졌습니다.
이 노래는 야살의 책에도 기록되었다고 했는데,
야살은 ‘정직한 자, 의로운 자’라는 의미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서
야살의 책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시문집과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10:13에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애가는 이스라엘이
용맹스런 지도자들을 잃어버린데 대한 슬픔,
특별히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데 대한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길보아산에서 스러진 용사로 묘사합니다.
이들의 죽음의 소식이 이방인들의 기쁨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질 것에 대한 염려가 드러납니다(20).
전쟁에서 죽기까지 서로 떨어지지 않았던
사울과 요나단의 특별한 부자 관계를
또한 그리고 있습니다(23).
비록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의 통치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누리게 되었던
평화와 안정을 다윗은 인정하고 노래합니다(24).
특별히 다윗의 애통함은
요나단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되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도록 사랑했던
요나단의 죽음을 그는 애통해합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던 사람의 실패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은 어떤 것일까요?
다윗의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망가지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그렇게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손익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명예에 모든 관심을 둘 수 있었던 데서
다윗의 이런 마음이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정치적 입장만을 고려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마음을 가질 수 없었겠지만,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 영예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19).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에 두신
그 영광에 있는가,
아니면 자기 자신에 집착하고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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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9-01
-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삼하 1:16)
사울의 죽음을 목격했던 한 사람이
혹시나 상을 받을까 하여 본인이 사울을 죽였노라고 거짓 증언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그 사람을 처형한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때때로 다윗 앞에 거짓을 고한 이 사람과 같이
하나님을 오해하며 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악을 행한다.
다윗이 사울의 죽음을 기뻐할 것이라고 오해했고
자신이 죽였다고 하면 다윗이 그에게 상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사람처럼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모습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지혜라는 이름을 빌려
거짓말을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거짓의 말로는 언제나 생명이 아닌 사망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내가 불의를 행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뜻 이루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하나님을 오해하여,
사실 나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모습으로 행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겠다.
오늘 말씀을 통해 거짓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기억하며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9-02
- "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삼하1:11)"
다윗의 진실함이 잘 나타나는 말씀이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의 죽음 앞에서 매우 비통해 했다.
사울이 죽음으로 더 이상 도망자의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이제는 왕으로써의 입자도 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통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의 그러한 진실된 행동은 다른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을 따르게했다.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사울을 죽음을 통쾌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다윗과 함께 슬퍼했다는 것은 다윗의 진정한 애통이 그들에게도
전달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 한자가 죽은 상황에서 진심으로 애통하며 슬퍼하는 다윗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러한 선한 마음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세우시고 보호해 주셨을 것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넉넉한 마음이 있기를 원한다. 누군가 나에게 조금만 잘 못해도
그 사람이 망하고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나의 유익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길 원한다.
다윗과 같이 혹 누군가가 내게 잘 못하고 때로는 나를 원수처럼 미워할지라도
넉넉한 마음을 갖고 그를 사랑으로 녹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