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9.20(목) 삼하18장_죄의 결과가 가져오는 슬픔
- 느헤미야강
- 2018-09-20
- 477 회
- 2 건
압살롬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의 싸움은
숫자만 많은 대군과 소수의 정예군 사이의 전쟁이었습니다.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 그리고 잇대에게 군대를 맡기면서
아들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모든 백성이 이를 들었습니다.
두 군대는 에브라임 수풀에서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지형 조건 때문에도 압살롬의 군대가 많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압살롬은 왕의 상징인 노새를 타고 달리다가
나무에 그의 위용의 상징이 되었던 머리카락이 걸리면서
공중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이 소식을 듣고 왕의 부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세 개의 창으로 공중에 달린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고
남은 군사들이 그를 쳐 죽이고 돌무더기에 매장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죽자 남은 군사들은 다 도망하여 흩어져버립니다.
소식을 전하기를 기뻐하는 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번에도 요압에게 자기를 보내 다윗에게
승전보를 전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이 승전 소식은 왕에게 단지 기쁘기만 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요압은
아히마아스 대신 구스 소년을 보내기를 허락합니다.
이후에 계속되는 간청에 요압은 허락을 하게 되고,
아히마아스는 구스 소년 보다 빨리 달려
다윗에게 가서 승전 소식을 전하지만,
지혜롭게도 압살롬에 대한 소식은 피해갑니다.
이어 달려온 구스 소년이 전해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다윗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통곡합니다.
결국 다윗의 슬픔은 승전하고 돌아온 모든 군사들에게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들은 개선 장군이 아니라
도리어 패배한 국가의 군인들처럼 돌아오게 되고,
계속해서 승리와 예루살렘 귀환 축하의 분위기가 아닌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요압은 왕을 비난합니다.
다윗은 요압의 말을 듣고 자신의 슬픔을 이기고
성문에 앉아 백성을 치리하기 시작합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압살롬의 죽음과 함께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압살롬의 죽음이 아니라
다윗의 슬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왜 이토록 슬퍼하는가?
이것은 지나친 맹목적 슬픔은 아닌가?
다윗이 이렇게 슬퍼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밧세바와 간통을 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죄악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윗은 오래 전의 죄가 가져오는
죄의 결과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밧세바와 동침, 우리야를 죽인 죄에 대하여
용서는 하나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죄는 이렇게 인간을 비참함과 슬픔과
아픔 속으로 인도하여 들입니다.
한편 지나친 사적인 감정이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
다윗의 군대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 모릅니다.
사적인 감정이 지나칠 때,
그것은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유익할 수 없다는 사실도 본문은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아들이 결국 죽었습니다.
왕위를 찬탈한 아들이었지만
그는 다윗에게는 피붙이 아들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의 슬픔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다윗 일생에 이렇게 비통하고 애통해 하는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다윗은 이런 비통함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압살롬과 다윗에게 준 시간의 기회가
9년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배다른 형제 암논이
자신의 여동생 다말을 범했다는 이유로 그를 죽였습니다.
그를 살해한 이후에 그술 땅으로 가서
정치적 망명을 3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다윗은 3년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압살롬을 불러다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징계를 하고 용서해주어야 했는데
그술 땅에 가서 머무르는 3년을 그냥 보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으로 불러놓고 단 한번만
그의 얼굴을 마주쳤을 뿐입니다.
딱 한번 압살롬을 만나고 2년 동안 방치했습니다.
만나지 않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압살롬은
4년 동안 왕의 궁전 앞에서 송사하기 위해서 올라오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백성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마음을 훔치는 시간이
자그마치 4년이었습니다. 합쳐서 총 9년입니다.
망명생활 3년, 예루살렘에서 2년,
그리고 왕의 앞에서 송사하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로채는데 4년,
총 9년의 시간을 다윗은 압살롬을 방치했습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혼을 용서해야 하는데
징계도 하지 않고 용서도 하지 않는 시간을
9년이나 보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자녀를 용서하지도 않고 징계하지도
10년 가까이의 세월이 오늘 다윗이 겪는
비통함의 시간을 만들어낸 이유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나와 관계가 불편한 사람,
특별히 내 가족, 내 자녀, 내 이웃.
그들과 함께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좋은 관계를 맺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자식을 비롯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풀어야 할 것은 풀고 잘못한 것은
용서를 구해서 더 깊은 사랑을 누리시는
지혜로운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우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흙으로 빚어진
연약한 인생들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을 떠나보낸 후에
아들의 이름을 외쳐봐야 떠난 아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9년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이후에 비통해 하는 다윗은
죽은 아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지혜로운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불편한 감정과 마음을 그 날 해소하며 살겠습니다.
주어진 모든 관계에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전글 9.21(금) 삼하19장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18.09.21
- 다음글 9.19(수) 삼하17장_한 마디 기도,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 18.09.19
-
- 이형원전도사 18-09-21
-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산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장 33절)"
오늘 본문에서는 압살롬과 다윗의 군대가 전쟁을 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 전쟁은 너무나도 싱겁게 다윗의 승리로 끝이나게 된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의 승패이기도 했지만 압살롬의 생사여부였다.
압살롬은 전쟁 중 결국 목숨을 잃게 되었고 이것을 알게 된 다윗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윗은 그 아들 압살롬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을 보면
차라리 내가 죽었더면 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목숨보다 중요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은 다윗을 더 할 수 없는 비통한
자리에 내 몰게 된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다윗의 죄였다. 죄에 대한 용서는 받았지만 그 대가는
치르게 되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만큼 사랑하는 아들을 온전히 대하지 못하고 방치했던 그 모습
또한 이러한 비극을 맞이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먼저, 내 삶 속에 죄가 없길 원한다. 그리고 혹 죄가 유혹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의 무서움을 알길 원한다. 그래서 죄로 인해 넘어지고 시험당하고
고난당하는 삶을 살지 않는 자녀가 되길 원한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길원한다.
그를 잃고 나서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했음을 고백하는 다윗의 모습은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압살롬이 살아있을 때 또 함께 했을 때 이러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알게 했더라면 이러한 비극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사랑의 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사랑하는 만큼 그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09-21
-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삼하 18:15)
아버지 다윗에게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킨 입살롬의 최후는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압살롬의 계략이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압살롬의 반역으로부터 시작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모두 죄와 무관하지 않다.
밧세바를 탐한, 우리아를 죽게한 다윗의 범죄로부터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속인 압살롬의 죄악.
단순히 죄를 지으면 우환이 생긴다는 인과응보라기보다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한 태도는 늘 이렇게
선하지 않은 열매, 복되지 않은 열매가 맺혀지기 마련이다.
다윗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왔을 때 그가 그것을 단호하게 잘라냈다면,
자신의 누이가 당한 고통 가운데 먼저 압살롬이 하나님께 호소했다면,
압살롬의 범죄 가운데 다윗이 더욱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면
오늘의 이러한 고통과 또 한 생명의 죽음은 겪지 않아도 됐으리라.
죄는 사망을 낳음을, 죄의 삯은 사망인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하게 묵상하게 된다.
내안에 시시각각 찾아오는 죄의 유혹 가운데
여전히 무너지고 넘어질 때가 있지만
다윗 가문의 이야기들을 거울로 삼아
늘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로 죄와 싸워
생명을 낳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