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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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근거는 내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 에스겔 20:40-49

  • 새생명
  •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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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41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흩어진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42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43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  

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  

47 남쪽의 숲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의 가운데에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없애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48 혈기 있는 모든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49 내가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바벨론 뒤에 일어 날 회복과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해 남쪽을 향해 예언하라는 내용입니다. 내용상 두 부분은 순서가 맞지 않는데 그 이유는 두 번째 것은 히브리 성경 원문에 그 다음장의 서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 첫번 째 것은 20장의 마지막 부분이고 두 번째 것은 21장의 처음 부분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은 문자적으론 모든 방향을 이르는 말인 동서남북의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다 곧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쪽은 유다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쪽의 숲도 유다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유다 남쪽의 숲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고원성 건조 지대를 말하며 유다와 시므온 지파의 영역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숲은 매우 건조한데 유다의 영적 상태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황폐하고 말랐다는 뜻입니다.

산불을 경험 해본 사람들은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압니다. 우선은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바람까지 불면 마치 불붙은데 휘발유를 뿌리는 것과 같이 맹렬히 번지기만합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그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공중에 비행한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그 불은 다른 지역에가 불을 붙이게 됩니다. 수일간 불이 계속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남쪽에 숲을 쳐서 예언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진노의 불이 이스라엘 남에서부터 북까지 꺼지지 않고 맹렬히 불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그 불이 무서운지 사람들은 그 불을 일으킨 존재가 여호와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연적인 불도 무서운데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불입니다. 산불은 소나기가 오거나 용감한 소방관들의 수고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은 아무도 끌 수 없습니다. 과연 그 말씀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의 불길이 이스라엘 열 지파를 소멸하였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있는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택한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돌이키지 않으면 가차없이 진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경우에 있든지 죄 짓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빨리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죄는 질이 더 나쁘기 때문입니다. 사실 죄의 권세를 깨트리는 힘도, 그 결박을 풀 수 있는 능력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자체가 죄덩어리니까요.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보혈이 필요합니다. 그 피가 우리를 정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불을 밤에 보면 더 실감이 갑니다. 불꽃이 그렇게 두려울 수 없고 타는 영기와 재가 꼭 나와 우리집을 태우는 것 같습니다. 죄는 우리를 태우는 불꽃과 같습니다. 흔들리기 쉬운 우리들입니다. 자주 넘어지는 우리들입니다. 그때마다 우리 예수님의 손을 꼭 잡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노의 맹렬한 불길을 잠 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느헤미야강 15-10-17
      에스겔 20;40-49절 큐티말씀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40절)

      산이가 5살때쯤인가 심하게 혼낸적이 있다.
      몇 번씩 부탁도 해보고
      경고도 줬지만 고쳐지지 않는 문제가 있을때여서
      작정을 하고 야단을 쳤다.
      그동안 한번도 자기에게 큰소리 내지 않은 아빠가
      엄하게 혼을 내는 모습을 보고는
      좀 놀란 것 같았고 너무 서럽게 울었다.
      그래도 단호하게 야단을 쳤다.
      "이제 잘 할거지?"
      "아들, 이리와 아빠가 안아줄께!"
      그래도 한참을 울었고
      꽤 오랫동안 안아주면서 마음을 달래 주었다.
      아이도 한참을 아주 서럽게 울었다.
      야단을 쳐야 할 때라고 판단해서 혼을 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큐티 본문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 마음도 아프셨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스겔은 심판과 징계의 말씀이 많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죄만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심판 중에 누구보다도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 할 것 같다.
      심판하시고 회복을 약속하시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아이를 야단치고 안아주었던
      아버지 마음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맡겨주신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아끼시는지 깨닫게 된다.
      혼내시고도 아파하시는 아버지가 마음에 두신 영혼으로
      맡겨주신 성도들을 보게 하신다.

      그렇게 생각하니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과 베드로와의 만남이
      목회와 목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실 즈음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로 하셨다.
      예루살렘에 입성할때 이제  예수님정부가 들어서는구나
      뜻도 모르고 누가 크냐고 다투었었던 제자들.
      예수가 왕이 되면 자기들이 한 자리 할거라 믿었터였다.
      병도 고치고, 오병이어도 일으키신 주님이라면
      왕이 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픈이들, 먹거리도 완전히 해결하실 왕이기때문이었다.
      그렇게 믿었는데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이게 뭐지 싶었을 게다.
      그런데 정말 삼일만에 부활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여러번 나타나셨다.
      갈릴리로 가라하셨다.
      가라하시니 가겠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예수님.
      갈릴리로 가서 생업도 자기집으로도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7명의 제자들
      에이 난 고기 잡으러 갈란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도 빈 그물.
      그때 요한이 소리쳤다.
      주님이시다.
      정신없이 배에서 뛰어내려 달려갔다.
      부활의 주님이 또 나타나셨다.
      아무말씀이 없으시다.
      불을 피우시고 고기를 구우신다.
      아무도 말하는 이 없었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너 나를 사랑하니?
      너 나 사랑하니?
      너 나를 사랑하니?

      너는 나를 사랑하냐? 세 번 물으시고는
      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그때 베드로는 마음이 어땠을까?
      먹먹해도 그런 먹먹함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동안 뿌려 놓았던 수 많은 영혼과
      앞으로 믿게된 영혼을 맡기니 잘 감당하라는 뜻이었을게다.

      목사가 내 기준과 인품으로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다른 누구에겐가가 아니라 나에게 맡기셨으니
      섬겨야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알수록
      더 충성된 모습으로 나에게 맡겨진 양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거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