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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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목) 왕하14장 - 은혜아닌 것이 없다

  • 느헤미야강
  • 2018-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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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건

1.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에 대한 기록이며,

북왕국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와

그 아들 여로보암(2)에 대한 기록입니다.

먼저 신하들의 반역으로 모살당한 요아스를 이어 왕이 된

아마샤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비교적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왕들을 평가하시는 기준은 다윗입니다.

아마샤는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평가되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

그는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았는데(4),

이는 성전이 세워지기 전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을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높은 산에 산당을 세워

하나님을 섬기던 관습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산당은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에

혼합주의를 가져오는 관문이 되어왔습니다.

아마샤의 개혁은 철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샤는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처형할 때

소위 삼족을 멸하는 식으로 원수를 갚지 않았는데

이는 율법에 순종한 일이었습니다(6; 24:16).

 

아마샤는 군사적인 면에서

에돔과 전쟁을 하여 영토 확장에 성공하자(7),

교만해져서 북왕국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입니다(8).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권고를 듣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벳세메스에서 전쟁을 일으킨 아마샤는

결국 패하여 예루살렘 성벽이 헐리고

자신은 인질로 붙잡히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이때 요아스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금은과 기명을 탈취했다는 기록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요아스 왕이

마치 이방 나라가 행하는 것과 같이

행했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14).

 

북왕국 왕 요아스가 죽고 그 아들 여로보암이 왕이 되고,

아마샤는 요아스 보다는 15년을 더 살았지만,

자기 아버지 요아스처럼 신하들의 반역으로

라기스까지 도망하여 모살되고 맙니다(19).

유다에서는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됩니다.

 

2.

이스라엘의 창건왕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여로보암(2)의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정치적, 군사적 전성기를 맞습니다.

이때 선지자 요나가 활동을 하는데,

그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옛 고토,

잃어버린 땅을 회복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고

여로보암은 앗수르의 공격으로

약화된 아람을 공격하여 국경 확장에 성공합니다.

이것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토를 회복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시대는 비록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린 시대였지만,

영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히 어둡고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그는 41년이나 통치했으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24).”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의 시대에 번영을 주셨을까?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다(26~27).”

 

3.

아마샤는 비교적 괜찮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동족 간의 전쟁을 일으켰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여로보암(2)은 악한 왕이었음에도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평안을 주시는 것을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마샤에게는 고난을 통해서

베푸시는 은혜가 있다면(‘잔인한 자비라고 불리는),

요나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는 방식으로

여로보암에게 주신 은혜 역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없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은혜와 자비를 베푸심을 알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합당하게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 john 18-11-09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 이었더라” (왕하 14:27)

      이스라엘의 열세 번째 왕 여로보암의 시대에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평안한 시대였지만
      정작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영적인 암흑기를 이어가게 했다.
      이렇게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승리를 주시며 번영의 때를 허락하셨다.
      번영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어째든 말씀을 통해 나타났듯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것을 볼 때
      이스라엘이 누렸던 당시의 번영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의인에게도 시련을 주시고
      또 다른 때에는 악한자라 할지라도 번영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묵상 가이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베푸시는 분의 크고도 높으신 경륜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같은 자에게도
      형통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심은 나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선하게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신다.
      그렇다고 하면 오늘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과 조건도
      나를 구원하시며 나를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내게 허락 된 모든 것들을 보며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된다.
      나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이 은혜가 나에게도 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허락하심이 최선임을 고백할 수 있다.
      오늘도 나에게 임할 은혜를 기대하며, 나에게 주셨던 은혜에 감사하며
      이 하루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 이형원전도사 18-11-11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14:4)"

      유대의 왕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 그가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이면서 그 신하들의 자녀들은 살려주는
      것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그가 다윗의 길로 행하지는 않았다고 표현하고도 있다.
      그에게도 신앙의 한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도록 방치하였다.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는 못했다.
      때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후한이 될 수도 있는 자들을 살려주기도 했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과 같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다.

      우리의 신앙에 때로는 진심이 있고 때로는 과감한 결단으로 주님을 따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이 있다.
      무엇인가 내가 약한 그 부분에 가서는 믿음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모습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일부 뿐 아니라, 또 때때로가 아니라 나의 전부를 언제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