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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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토) 왕하16 _ 세상을 추구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
- 느헤미야강
- 2018-11-10
- 480 회
- 2 건
1.
아하스는 세상을 추구한 삶의 전형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아합에 견줄 만 했고
회개의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아하스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경고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았고
북왕국의 악한 왕들의 전철을 밟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몰록에게 번제로 드린
잔인 무도한 우상숭배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를 통해서
유다를 공격하게 함으로써 아하스를 징계하셨습니다.
이때 용사 12만 명과 많은 귀족이 죽임을 당했고
무려 20만명이나 되는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대하 28:6~8).
아하스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은금으로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다메섹을 방문하여
그곳의 이방 제단에 감동을 받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동일한 제단을 만들게 합니다.
원래의 놋단은 옮겨서 점치는 용도로 쓰고
새롭고 거대한 이교적 제단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15).
이것은 마음에 성전 제사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젖혀놓고
이방신을 모신 행위입니다.
곤고함이 임해도 아하스는 기도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범죄하는 길을 택했습니다(대하 28:22).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여
유다를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2.
세상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삶의 전형이 여기 있습니다.
유다의 왕이었지만 그는 타락한 북왕국 왕들의 길을 걸었고,
또 암몬의 신 몰록에게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쳤으며,
앗수르 다메섹의 이방 제단을 예루살렘에 세웠습니다.
결국 그는 죽어서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도 못했습니다(대하 28:27).
우리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어느 누구도 세상을 따라 살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하스의 삶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열왕들에게 제시했던 삶의 기준은
여로보암이 아니라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온전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가?
아니면 소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서도
신앙으로 산다고 여기는 ‘평범한 교인’이 삶의 기준인가?
3.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자기 힘으로
어떻게해서든지 막아보고 모면해보려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거부하고
제 힘으로 일어나 보려는 노력은 악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깨닫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가?
혹시 내가 지금 당하는 어려움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낮추시려고 주시는 징계는 아닌가?
나는 지금 그 징계를 달게 받으며
겸비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십시오.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이 기준이 무너지면 우리는 다
아하스의 전철을 밟지 않을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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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11-11
-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왕하 16:7)
다윗 가문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악한 길을 답습했던 아하스는
급기야 자신의 아들을 이방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엽기적인 일까지 행하게 된다.
신앙은 단순히 출신으로 인해, 연조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와 같이 죄악된 길을 가던 아하스의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그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의지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모든 문제가 바로 여기서 부터 시작한다.
하나님 없이도 가능하다는 생각,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도 가능하다는 생각
바로 이러한 교만이 우리를 타락하게 하고 범죄하게 한다.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자란 나도
타고난 죄의 문제로 인해 늘 이렇게
하나님 없이도 되는 것과 같은 삶을 살 때가 많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모습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이 주인이요 왕이시라 고백하면서도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만나면
어김없이 인간적인 방법, 세상적인 해결책을 구하며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사람처럼 행한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큰 교만이며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깨닫게 된다.
모든 문제 앞에, 상황 속에 유일한 해결사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고 그 분만을 의지하는 삶이
오늘 나에게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겸손이며,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원하시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어
늘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방법대로 행하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사는 내가 되기를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11-12
-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왕하16:8)"
하나님의 사람은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린다.
그리고 그의 어려움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산다.
반면에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않는 자들은 어려움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때로는 그 방법이 옳지 않은 방법임에도 그러한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오늘 말씀에 아하스 왕은 그의 죄와 또 선조들이 버리지 못했던 죄로 인해
어려움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모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로 그는 더 큰 죄를 짓게 되었고 회개의 기회 또한 날려 버렸다.
당장 어려움은 면했을지 몰라도 그 어려움이 찾아온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는 커녕 더 큰 원인을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세상적인 방법을 의지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일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으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볼 기회를 잃어버리고 회개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다.
내 안에 여전히 죄악된 모습이 많이 있다. 여전히 때로 정직히 행하지
못 할 때도 많이 있다. 이럴 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귀기울여 듣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경고를 똑바로 인식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길 바란다.
그럼으로 주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계속해서 날려버리고
이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때로 조금 돌아가고 때로 조금 벗어날 때가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나를 인도하시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