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1.15(목) 왕하20장 - 자기자랑<하나님자랑
- 느헤미야강
- 2018-11-15
- 411 회
- 2 건
1.
본문은 18~19장에 기록된 앗수르의 유다 침공이 있던
주전 701년 이전의 일을 기록하는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이 들고
이사야 선지자는 죽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벽면을 향하여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15년의 시간을 연장시켜 주십니다.
히스기야는 삼 일 만에 나아서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란 말씀을 듣습니다.
또 ‘하나님 자신과 다윗을 위하여’ 앗수르의 손에서
유다를 건져주실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6절)은 앗수르의 공격이 곧 있을 것을 암시합니다.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를 구하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아하스가 만든 해시계가 10도를
물러가게 함으로써 징조를 보이십니다.
히스기야의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그 시간은 15년이란 제한된 시간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남은 수명처럼,
유다의 운명도 이제 제한된 시간의 연장을
받고 사는 것이란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벨론의 사절단이 방문을 했습니다.
적국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서
바벨론과 좋은 외교관계를 필요로 했던 히스기야는
사절단에게 보물과 무기 등 모든 것을 다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이 일을 호되게 책망하는데,
앗수르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나
죽을 병에서 나음을 입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히스기야는 바벨론을 의지하여
그와 친하려 하는 마음에서 그리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다가 앗수르가 아닌 바벨론에게
1세기 후에 멸망할 것을 선고하셨습니다.
물론 그 일은 히스기야의 생전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선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19)?”
3.
히스기야는 기도로 인생의 1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연장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어지는 잘못으로 1세기 후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멸망 선고를 받습니다.
히스기야의 연장된 시간은 유다의 연장된 시간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사용하는 모든 시간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는 것이 연장된 시간을
은혜로 사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내 것이란 생각은 없는지요?
지금 사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4.
기도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까지 변화시키는 수단이며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도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모든 사건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5.
선지자들의 끊임없는 도전은
하나님을 의뢰할 것인가, 사람을 의뢰할 것인가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로부터의 구원(19장),
그리고 죽음으로부터의 구원(20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도움을 구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기대하시는 수준은 다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서 많이 취하십니다(눅 12:48).”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시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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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11-16
-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왕하 20:17)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이따금씩 경험하며
생명을 죽이고 살리시는 분,
일을 진행하시고 멈추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임을
그래서 내가 의지하고 바랄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임을
고백하게 되지만, 여전히 세상적 안목과 가치에 흔들려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의지하게 될 때가 많다.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의 모습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고도 놀라우신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좋은 조건, 즉 바벨론을 의지하려는
히스기야 왕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무섭게 질책하셨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신는 우상숭배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나의 삶에도 여전히 주인 되시고 인도자 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지만 나 역시도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조건을 의지하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위기가 찾아오고 어려움을 겪을 때,
또한 나의 약함을 발견하게 될 때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이와 같은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아무리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뿐만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순간에
내가 늘 바라보고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인생 되기를 소망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11-18
-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아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3)"
히스기야는 엘리야로 부터 사형선고와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이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그 얼굴을 벽을 향하여
대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자신이 지금까지 진실과 전심으로 행했던 주님이
보시기에 선하게 행함을 기억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셨을 뿐 만아니라 앗수르 왕의 손에서도
구원해 줄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주님 앞에 선을 행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행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당당하게 나의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기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사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시길 바랍니다.
나의 기도에도 나의 행함을 기억해 달라는 기도가 가능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 그래서 주님 앞에 구하는 기도에 어떠한
가식도 없는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