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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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화) 느13장_개혁은 말씀으로, 매일 매일

  • 느헤미야강
  •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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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기점으로 올해 구약 메인 역사서 11권의 성경통독을 마무리 합니다.

2019년 신약 성경통독은 1월1일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동안 함께 읽어가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수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맺어 인을 쳤지만,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능력이 없었습니다.

결심과 의지는 가상하나, 자기 힘으로 믿음의 삶을 살 존재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금방 나태해졌고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직책과 사명을 따라

그들을 책망하여 바로잡습니다.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산발랏과 함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앞장 서서 반대하던

암몬 사람 도비야는 분별력 없는 대제사장 엘리아십

(첫번째 귀환할 때의 대제사장인 예수아의 손자)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사돈 관계까지 포함하여)를 맺고 있었습니다.

12년의 총독직을 정리하고 아닥사스다 왕의 부름을 받고

돌아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도비야가 엘리아십의 배려로 성전 안의 십일조를 모아두는 창고에

개인 용도의 방을 제공받은 것을 알게 된 느헤미야는

분노하여 그 방에 있는 도비야의 모든 세간을

방 밖으로 집어 던지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본래의 기능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행위였습니다.

모압과 암몬 족속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는

23:3~5 말씀대로 모압 사람 도비야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할 수 없었고,

그가 성전 안에 들어와 살았다는 것은

엄청난 신성모독 행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던 일을 연상하게 합니다.

 

물질 생활에서의 거룩함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ㄴ다(10~14).

느헤미야는 레위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자기 본성의 세속 직업으로 돌아가서

성전 일을 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이 다시 시작했던 십일조를

계속 신실하게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모든 민장들(지도자들)을 불러

꾸짖어 책임을 묻고,

충성된 사람들을 세워 십일조를 다시 하게 하고

그것이 레위 사람들에게 잘 분배되게 하였습니다.

 

확립된 영적 질서는 계속 백성들의 헌신에 의해 유지되어야 합니다.

한 번 받은 은혜로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물질 생활에서의 거룩함은 내가 가진 재물()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의 청지기직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경제 생활과 시간 영역에서의 거룩함도 요구됩니다(15~22).

언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에 일을 하고 이방인들과 장사를 하면서

이방신상들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을 경고하고(15) 모든 귀인을 꾸짖어 그 책임을 물었습니다(17).

또 안식일 저녁이 되기 전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출입을 금했습니다.

그는 안식일에 기회를 엿보며 성문 밖에서 잠자는 자들까지

모두 쫓아내고 안식일 규례를 다시 확립하였습니다.

안식일 규정은 경제생활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베푸시는 은혜를 신뢰하라는 명령이며 그날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에 떼어놓는 시간이 과연 충분한지,

주일 마저도 인색함으로 나아가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결혼 관계에서의 거룩도 중요합니다(23~27).

언약의 내용에는 결혼 관계에서 거룩함을 지키겠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이방인들을

며느리로, 사위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생기는 문제는 자녀들이 유다 말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방언, 아스돗이나 모압, 암몬 방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두어 사람을 잡아(느헤미야는 총독의 직을 가진 자였다)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거룩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습니다.

당사자들인 젊은이들은 그렇다 치고

믿는 부모들도 신앙을 결혼의 결정적 기준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이 타락입니다.

 

성직에서 거룩을 지켜야 합니다(28~31).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하나가

대적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을 안 느헤미야는

그를 제사장직에서 쫓아냄으로써

제사장직과 레위 직분의 거룩함을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가 성직으로 부름 받았지만,

목사는 기능적 차원에서 구약의 제사장과 같은 기능을

감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기능이 오늘날

세속적 리더십과 방법론들로 더럽혀지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나야 할 목사들은 이 시대에 얼마나 많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삶은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돌보지 않은 잔디처럼

며칠만 지나도 잡초들이 일어나고 무성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마음의 변화와 개혁은 일어날 수 없으며,

매일 말씀에 의한 도전과 책망과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을

느헤미야 13장은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함이 깨지고 더럽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거룩함이 더럽혀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식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기도로 반응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경고하고 꾸짖고 책망하고 분노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정서에 부합하여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분노와 책망은 교회 안에서 회복되어야 하고,

주님께서 교회에게 맡기신 권징(discipline)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교회의 거룩(도비야 사건),

물질 생활에서의 거룩(십일조의 의무),

경제생활과 시간에서의 거룩(주일을 보내는 것과 시간 사용의 문제),

결혼과 가정에서의 거룩 그리고 성직에서의 거룩은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문제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우리가 스스로 비추어볼 거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변 교회가 어떻게 하더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다고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을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새롭게 개혁되어야 합니다.

 

기도 없는 개혁은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오늘 본문에서 수 차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가 하는 것은 정치 개혁이 아니라 영적 개혁이었습니다.

의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순간 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의 사람을 높이 들어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을 영적으로 회복하는데 놀랍게 사용해주셨습니다.

 


느헤미야 후기:


느헤미야를 읽고 묵상하면서 한 가지 지울 수 없는 생각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과 이후 사건들은

오늘날 교회를 위해서 주어진 말씀인데,

교회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 느헤미야서는 특별히

교회의 멤버십에 대한 적절하고도 중요한 원리를 제공해줍니다.

성전이 재건되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백성의 구별된 삶이 없이 드려지는 제사가 가능하겠는가?

성벽이 재건되어야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의 삶과 구별될 수 있었습니다.

성벽이 재건되었어도 성문이 적절하게 열리고 닫힘으로써

누가 언제 출입할 수 있는지 통제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느헤미야에게 주신 일차적 소명인 성벽 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무너진 삶을 거룩하게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일을 감당했고,

나아가 무너진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다시 세우는 일까지 감당했습니다.

이점에서 진정한 교회 건축이 무엇인지 느헤미야서는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거룩하게 회복하는 일입니다.

    • 이형원전도사 18-12-20
      "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13:14)"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이제 은혜 가운데
      거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으로 기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다짐했던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러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그 모든 것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게 된다.
      도비야에게 줬던 성전 안의 큰 방에 있는 물건을 다 내어 던지고 그 곳의 원래 기능을
      되찾게 하였다. 그리고 십일조가 드려지지 않음으로 생활이 어렵게 되자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버린 레위인과 노래하는 자들을 다시 부르고 민장들을 꾸짖어 십일조를 다시
      드리도록 하였다. 또한 안식일을 지키고 이방 혼인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했던 조치였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때로는 다짐도 하면서 내 삶을 변화해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다짐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많이 있다.
      한 때 은혜 받았을 때 했던 일로 전락해버리고 지금 나의 삶과는 상관없이 살아갈 때도 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지 않았고 결국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했던 결과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특별히 올 한해 역사서 말씀을 통독하며 이제 그 마지막 장을 묵상하는 가운데
      말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나의 삶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