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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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마태1장_예수님의 족보

  • 느헤미야강
  • 2019-01-01
  • 502 회
  • 1 건

2019년에는 신약성경과정을 통독합니다.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

 

1-17: 예수님의 족보

족보는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하는 도구입니다.

족보에 나온 이름은 각각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전할 수 없기에 이름만을 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서두에 나오는 족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이루어 오신 구원의 역사를 요약해 줍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 많지만,

마태복음의 쓰여질 당시의 유대인이 이 족보를 읽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족보를 한숨에 읽어 내려가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이름 하나 하나에서

멈추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등과 같은

낯익은 이름 앞에서는 잠시 멈추어

그들의 이야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그리고 그 절정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준비되었던 일입니다.

 

17절에서 “14대를 세 번 반복한 후에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강조하는데, 14는 완전수 7의 곱이며,

3은 또 다른 완전수입니다.

즉 예수님의 탄생은 오랜 동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헬라어) 메시아’(히브리어)이셨습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에서는

족보에 남성 이름만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에는

네 명의 여성(다말, 라합, , 우리야의 아내)이 나옵니다.

네 여성의 공통점은 세 가지

여성이라는 점,

이방인이라는 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는 유대인, 남성

그리고 거룩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방인, 여성 그리고 깨어진 사람들까지도

참여해 왔다는 뜻입니다.

그 역사는 비천한 마리아와 가난한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심으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나 혼자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주적이고 영원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눈을 감고 하나님의 장구한 구원 역사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역사의 흐름 안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18-25: 예수님이 태어나신 과정

마태복음은 카메라의 초점을 요셉에게 맞춥니다.

반면, 누가복음은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지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양아버지로서 요셉을 택한 이유는

그가 의로운 사람”(19)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의롭다고 인정 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며

신중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보다 마리아의 처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을 폭로하여 어려움을 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파혼하려 했는데,

천사가 개입하여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의 정체를 알려 줍니다.

 

그 아기는 예언자들을 통해 준비해 온 메시아로서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실”(21) 분입니다.

그분은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24)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결혼하고 나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시는 거룩한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한 것입니다.

 

묵상: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십니다.

모든 백성을 죄와 죄로 인한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보냄받은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그분은 늘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함께 하시면 죄로부터

그리고 죄로 인해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속에서부터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 변화의 한 단면을 요셉이 보여 줍니다.

 

요셉은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신중하고 사려깊게 행동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감정이나 사정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사정을 더 우선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사려깊음, 신중함, 배려 같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1-03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1:17)"

      마태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오심을 계획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자신의 시대를 살아갔고 그 안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때로는 많은 부대낌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기쁨과 행복이 함께 했을 것이다.
      작게 봤을 때는 한 사람의 인생의 모든 일이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고 또 그 삶의
      여정을 끝냄으로 마감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그 모든 사람들이 그 섭리
      안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게 된다.

      특별히 이례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4명의 이방인 여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특정한 민족 특정한 부류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 영향이 미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여전히 나는 내 삶의 작은 영역 속에서 고민하고 힘겨워하고
      때로는 그 안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
      또한 때로는 거룩하고 신실한 모습으로 또 때로는 죄의 유혹에 빠져서 주님을 기쁘게도
      또 슬프게도 하면서 여전히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내 모든 삶이 주님의 섭리의 일부분이 되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내 삶을 통하여 그 분의 큰 뜻이 이루어져 갈 것 또한 믿고 기대한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가장 작은 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자에게도
      그 분의 뜻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나의 삶 속에 나타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의미있게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