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23(수) 마태20장_상식을 뒤집는 하나님나라

  • 느헤미야강
  • 2019-01-23
  • 550 회
  • 1 건

포도원 품군의 비유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가르침입니다(1~16).

사실 이 비유는 처음과 끝이 같은 구절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는데

그것이 19:3020:16입니다.

즉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공정함이라는 잣대로

재고 계산하는 것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매겨놓은 등수가

하나님께는 무의미하고 오히려 거꾸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 6시부터 포도원 주인은 일군을 부르는데,

12시간을 일한 일군부터 오후5시에 포도원에 들어와서

겨우 1시간을 일한 일군까지 다양합니다.

그런데 종일 12시간을 일한 일군과 1시간을 일한 일군이

동일하게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 씩 받았습니다.

품삯은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해서 먼저 온 자에게 주어졌습니다.

먼저 온 자들은 약속된 것이 한 데나리온 이었지만,

1시간을 일한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이 주어지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이 더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주어지자

너그럽고 은혜로운 집주인을 원망했습니다.

여기서 주인이 자기 것을 가지고 자기 뜻대로 했을 뿐 아니라,

약속된 것을 주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인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을 보여주되,

자기의 뜻대로 하는 주권적 행사를 했으며,

비록 조금 밖에는 일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의 필요를 알고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너그러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비난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칭송을 받아야 할 부분이 아닙니까!

종종 우리가 빠지게 되는 실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 겨우 1시간을 일하고

한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함과 찬송보다는 원망이 더 많지 않습니까?

누가 과연 먼저 된 자이고 누가 나중 된 자입니까?

당신이 먼저 된 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주님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질 것과

삼일에 부활하실 것을 다시 말씀하십니다(17~19).

주님께서 그러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러해야할까요?

바로 이 이야기를 하실 때(20, ‘그 때에’)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의 로비가 등장합니다(20~28).

이제 주님은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주님의 메시아 사역이 어떤 방법으로

일어나게 될지를 깨닫지 못하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와서 메시아 왕국을 회복하게 될 때,

자기의 두 아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

영광의 자리를 주십사 구합니다.

이들의 문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께서 마시려는 잔을 마실 준비가 되었는가를 물으십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 사건은 제자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24).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어떻게 세상의 원리와 다른지를 설명해주십니다.

세상의 지도자는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지만,

영적 원리(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섬기는 자가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섬겨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는 자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자리입니다.

주님 자신이 그 모범이 되십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것이 영적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원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어 두 소경을 고쳐주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29~34).

이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면서 고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이렇게 불렀다는 것은

그들 자신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그런 믿음과 그 믿음에 기초한 간절한 부르짖음은

어떤 사람들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이렇게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나오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주님의 불쌍히 여김과

고쳐주시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다른 원리와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다른게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세상에서 권세와 명예를 얻으려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행동하는 것은

결국 맨 마지막 자리로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마시려는 잔을 마시고자 하는

각오와 섬기려 하는 마음으로 종이 되고자 할 때,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경험하는 길입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 방식을 가지고 행하면

분란과 다툼 외에는 초래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이 이 시대에도

우리들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나는 먼저 된 자인가, 나중 된 자인가?

나는 어떤 자리에 서기를 원하고 있는가

    • 이형원전도사 19-01-25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마20:31)"

      맹인 두 사람이 예수님이 지난간다는 소식을 듣고 소리를 지른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앞을 보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무리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소리지르는
      그들에게 잠잠히 하라고 윽박을 지른다.
      맹인들은 그러한 소리에 굴하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대로 예수님께서 만나주심으로
      앞을보게되었다.

      세상이 하는 소리가 있고 주님을 찾고자 하는 갈망이 동시에 존재했다.
      조용히 하라는 세상의 소리는 우리를 주눅들게 할 수 있다.
      주님을 부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의 소리가 우리의 신앙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더욱 더 큰 소리로 주님을 부르는 믿음이 있길 원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부르게 만들지라도
      그 안에서 주님만 찾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원한다.

      그럼으로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경험하고 그 분 한 분으로 인하여
      참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