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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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금) 마태22장_침묵케 하시는 예수님

  • 느헤미야강
  • 20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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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4: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하나님 나라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특성을 보여 주는 이야기를

또 하나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는 혼인 잔치를 비유로 드십니다.

하늘 나라는 마치 왕이 아들의 결혼을 위해 마련한 잔치와 같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3)은 왕이 미리 전갈을 보내어

초청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잔칫날에 시간을 비워 놓고 있어야 했는데

다른 일정을 잡아 놓고는 초청을 거절합니다.

심지어 심부름 온 종들을 잡아서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임금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응징한 다음

종들을 보내어 아무나 만나는 대로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종들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10)

가리지 않고 잔치에 데려 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대제사장들, 장로들,

바리새파 사람들, 율법학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잔치에 가장 먼저 와야 할 사람들인데,

오히려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살해 합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리, 창녀, 죄인들에게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누구나 초청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자격 없는 사람들이 잔치에 와서 한 참 즐기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임금이 그곳에 와서 둘러 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혼인 예복”(11)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가 끼어 있었습니다.

혼인 예복은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옷입니다.

그는 분명히 예복을 받았을 것입니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것을 입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잔치의 주인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그를 끌어내어

바깥 어두운 데”(13)로 내던지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부름받은 사람은 많으나,

뽑힌 사람은 적다”(14)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오는 데에는 아무런 조건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 안에 들어오면 마땅히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변화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복을 입듯이 그 능력을 입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입으로 하지 않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임금이 준 예복을 식탁 밑에 구겨 놓고

음식을 즐기기만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2. 

15-22: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이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음모를 꾸며 놓고

헤롯 당원들과 함께 찾아 옵니다.

헤롯 당원”(16)은 당시 헤롯왕에게 협조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께 아부의 말(16)을 던진 다음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를 묻습니다(17).

세금을 바치라고 답하면 예수님은 로마 황제의 주권을 인정하는 셈이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의 통치권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바치라고 답하면 무리들이 그분에게 등을 돌릴 것이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 총독에게 고발할 구실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간파하시고

세금으로 내는 돈을 보여 달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데나리온을 보여 주자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20)고 물으십니다.

데나리온 동전에는 황제의 얼굴과 로마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21)고 답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탄복”(22)하고 떠나갔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말씀을

정치는 정치고, 종교는 종교다!”라는 뜻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만일 이런 뜻이었다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탄복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탄복한 이유는 이 말씀 이면에 다른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믿음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로마 황제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답 안에 담긴 의미는

황제의 것이 있다면 그에게 주어라.

하지만 하나님의 것은 모두 하나님께 드려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정교분리를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3. 

23-33: 산 자의 하나님

이번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찾아 옵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들의 모임인데,

그들은 교리적으로 바리새파와 여러 가지 면에서

이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종말에 모든 의인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런 일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알고 찾아와 논쟁을 겁니다.

그들은 신명기 255-6절에 나오는 형사취수의 법을 사용하여

부활의 부조리성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29)고 대답하십니다.

 

부활 때”(30)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진 때를 말합니다.

그 때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30)는 말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졌을 때의 삶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부활 이후의 상황을 추정하며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활 혹은 영생은 이 세상의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에서의 인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달리 설명할 수 없어서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출애굽기 36절의 말씀 즉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과거형 동사(였다)가 아니라

현재형 동사(이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백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던그분은

모세 시대에도 그의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안에서 아브라함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32)라고 말씀하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어 있어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영원 하시다면 부활은 당연히 있어야 옳습니다.

 

4. 

34-40: 사랑이 전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부활 문제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 사이에

자주 다투는 논쟁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문제로 예수님을 몰아 세울까 궁리합니다.

그러던 중 어떤 율법교사가 가장 큰 계명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것은 율법교사들이 자주 논하는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5절의 하나님 사랑의 계명과

레위기 1918절의 이웃 사랑의 계명을 그 답으로 제시합니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39)라는 말은

중요성에 있어서 같다는 뜻입니다.

613가지나 되는 율법 조항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한 시행세칙인 셈입니다

 

5. 

41-46: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이번에는 예수께서 공세를 펴십니다.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누구의 자손인가 물으십니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다윗의 자손입니다”(42)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편 1101절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말한 사실을 지적 하시면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리스도는 혈통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신분에 있어서는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그리스도에 대해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분의 신적 성품과 능력에 있습니다.

 

묵상:

종교 권력자들이 돌아가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파 놓은 함정을 피하시면서도

하나님 나라와 당신 자신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전하십니다.

이미 그분의 가르침의 권위가

다른 종교 지도자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성전에서의 논쟁에서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분은 공격 당하고 있지만 실은 모두를 제압하십니다.

마치 그분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어쩌지 못합니다.

예수님 스스로 허락하지 않고는

그분을 걸어 넘길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1-2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3:39)"

      한 율 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해 질문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 학자의 질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 번째이며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사랑이 율법이 정하고 있는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인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가장 큰 계명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사랑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내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고백은 결코 온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만큰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