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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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목) 마태27장_예수님이 여신 길
- 느헤미야강
-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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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6절: 빌라도 앞에서
새벽이 될 즈음 산헤드린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합의합니다.
당시 산헤드린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에
유다 총독 빌라도에게 사형 집행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 관저로 향합니다.
그 때 가룟 유다는 일이 잘 못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넘겨 줄 때 그는 사형까지 갈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대가로 받은 은 삼십을 되돌려 주려 했지만
그들은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나가 목을 매어 자살을 합니다(5절).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내던지고 간 은 삼십으로 밭을 사서
나그네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마태는 이 사건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떠 올립니다.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지만 너무 늦었고,
또한 돌이키지 않고 자살로 마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인생을 살았습니다.
산헤드린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고발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라고 묻습니다(11절).
로마의 식민지에서 왕으로 자처하는 것은 곧 반역 행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11절)라고
대답 하시고는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총독은 예수님의 침묵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14절).
그것은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예수님은 그 뜻을 따르기로 결단한 상태이기에 침묵을 지키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난감해졌습니다.
자신이 볼 때 유대인 권력자들이
예수를 모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18절).
잔인하고 무법적인 것으로 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빌라도였지만
어떻게든 그 사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무리가 원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관례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놓아 줄 궁리를 합니다(15절).
그는 바라바와 예수님을 무리 앞에 세우고 둘 중 하나를 택하도록 요구합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택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 하라고 요구하게 만듭니다.
빌라도가 당황하고 주저하자 무리의 소동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마침내 빌라도는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24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무리는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25절)라고 응답합니다.
그들은 흥분하여 그렇게 말했지만, 그들의 말은 예언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님을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내어 줍니다.
2. 27-56절: 십자가에 달리시다
총독의 병사들은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끌고 들어가
왕으로 분장시킨 다음 그를 조롱하고 희롱합니다.
인간은 숨겨진 야만성을 안심하고 표출시킬 대상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의 야만성이 충분히 만족된 후 그들은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처형장으로 갑니다.
이미 많은 고문과 희롱으로 인해 지친 예수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인간적인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아 본 병사들은
지나가던 사람 하나를 불러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합니다.
그는 구레네에서 순례 온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32절).
그는 참 운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나중에 그것이 엄청난 행운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골고다(‘해골 언덕’)에 이르십니다.
그곳은 십자가 처형을 받은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었기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그들은 “포도주에 쓸개를 타서”(34절) 예수님께 마시게 했으나 받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고통을 덜 느끼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겉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는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 예수다”(37절)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죄패를 보고 모두 코웃음 쳤지만,
실은 그분은 진실로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해 지나가던 사람들은
조롱과 모욕을 담은 말을 쏟아 놓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처형 장면을 너무도 간략하게, 너무도 담담하게,
꼭 필요한 단어만 사용하여 서술합니다.
상세하게 서술 하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이야기였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자세하게 쓰자면 한이 없는 것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 대목을 기록 하면서 마태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후 얼마 지나 정오쯤 되었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약 세 시간 동안 온 세상이 깜깜해졌습니다.
그 어둠이 걷힐 즈음에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소리를 지르십니다(46절).
그것은 시편 22편의 첫 절입니다.
극심한 고난 중에 처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얼마 후 예수님은 다시 한 번 크게 외치신 후에 운명하십니다(50절).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때 예루살렘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습니다(51절).
성전 휘장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장벽을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 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르고 있던 벽이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자유로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때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 났고(52절)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 났습니다(53절).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지금 우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과
죽은 자들의 세상 사이의 벽이 잠시 허물어졌다는 뜻있는 분명합니다.
1차원 시간이 영원과 잠시 교차된 것이고 3차원 공간의 한계가 잠시 뚫린 것입니다.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려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백부장과 그의 병사들은 뭔가 알 수 없는
경외감에 사로잡혀 “참으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54절)고 탄식합니다.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멀리서 지켜 보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3. 57-66절: 무덤에 묻히시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시신은 그대로 두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죄수의 목을 잘라 거리에 걸어 두는 형벌처럼
대중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기에 대개의 경우
사형수의 시신이 부패하여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에게 청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돌무덤에 안치합니다.
정치범으로 처형 당한 사형수의 시신을 수습하게 해 달라는 청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산헤드린 의원이었던 요셉은 비밀리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는 그분이 사형 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시신이라도 수습해 드리고 싶었기에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여인들이 지켜 보았습니다.
다음 날 산헤드린 의원들이 빌라도는 찾아가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던 예수님의 말씀을 거론 하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치지 않도록
무덤 경비를 단단히 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63-64절).
빌라도는 경비병들을 그들에게 내 주어 무덤을 지키게 합니다.
묵상: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권위있는 말씀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가르치셨고,
여러 가지 기적으로써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고 그 나라의 사람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이르는 길을 막고 있는
죄라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바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막고 있던 죄의 장벽이 무너졌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1차원 시간과 영원 사이의 벽이 무너졌고
3차원 공간과 하나님 나라의 담이 뚫렸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몸을 드려 그 길을 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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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2-01
-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마27:26)"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러한 빌라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난 군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로라고 외쳤다.
자칫 민란으로 번질까 고민했던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를 십자가에 내어주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피에 대하여 자신은 무죄하다고 이야기했으나
그에게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우리의 모습에도 빌라도와 같은 모습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의 뜻이 아닌줄 알면서도 내 이익과 관련해서는
혹은 내가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 보이면 그 일을 행할 때가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룸에 있어서는 그 어떤 타협이나 용납이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무죄함을 알았더라면 어떠한
군중들의 압박에도 그는 예수님을 풀어주었어야 했다.
나에게 때로 복음때문에 어려움이 온다할지라도 또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일을 외면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주님의 종이
되길 기도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나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가고 또 그렇게 쓰임받는 주님의 종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