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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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금) 마가12장_나는 하나님을 아는가

  • 느헤미야강
  •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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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2: 하나님의 반전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잘 지어 놓고는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났습니다.

때가 되어 주인은 세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를 때리고 빈 손으로 보냅니다.

분노를 참고 또 다른 종을 보내도 동일하게 행동을 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점점 악해지더니 나중에는 보낸 종을 죽이기까지 합니다(3-5).

결국 주인은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6) 생각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 포도원을 영구히 차지할 마음으로

그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집니다(7-8).

 

구약성경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민으로서의 책임을 맡긴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이스라엘 백성 혹은 그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세를 받으러 보낸 종들은 예언자들을 의미합니다.

참 예언자들은 모두 고난과 박해를 당했고 때로는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냄 받은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당신이 당할 일을 내다 보시면서 이 이야기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예루살렘 성 바깥에 버릴 것입니다.

 

비유를 말씀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주인이 그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9) 시편 11822-23절을 인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려진 돌이 가장 귀한 머릿돌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반전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의 자격을 박탈 당하고

새로운 선민이 세워질 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비유의 뜻을 알아 듣고는 당장 예수님을 잡고 싶었지만

사람들 눈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2. 13-17: 하나님의 주권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넣을 구실을 찾다가 묘수를 발견하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서 몇 사람을 파견합니다(13).

그들은 먼저 예수님께 아부성 발언을 합니다(14).

그들은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실은 그들의 말이 예수님에 대한 진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분이시고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분이며

사람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는분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14)라고 묻습니다.

 

로마의 식민 지배 아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로마 황제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을 인정해 왔던 유대인들에게는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황제에게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예수님을 꼼짝없이 묶어둘만한 묘수였던 것입니다.

세금을 내지 말라 하면 정치범으로 고발 당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내라고 말하면 그분을 따르던 군중이 일시에 등을 돌릴 것입니다.

 

그 속셈을 아신 예수님은 데나리온을 보여 달라고 하시고는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으십니다(16).

데나리온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초상과 로마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라고 답했고,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17)고 답하십니다.

이 대답은 표면적으로는 세금을 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에 의하면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답을 통해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말씀은

황제의 것이 있다면 그에게 돌려주라.

하지만 황제 조차도 하나님의 것인 줄 모르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경탄했습니다.

 

3. 18-27: 하나님의 초월성과 영원성

이번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들의 이익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신도 신앙 운동이었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습니다.

그 중 하나가 부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도 바리새파처럼 부활을 믿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할 때마다 사용했던

어려운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도전합니다.

 

형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위해

대신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는 율법 규정(19)

일곱 형제의 가정에 적용하여 가상의 상황을 만듭니다.

맏형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어서 그 동생이 형수를 취했는데

그도 자식을 두지 못하고, 그래서 셋째가 그렇게 했는데 그도 자식을 낳지 못하고,

그렇게 일곱째까지 했다는 것입니다(20-22).

이럴 경우, 부활의 날에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이

그들의 질문이었습니다(23).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24)고 답하십니다.

부활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부활의 세계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그 진실을 거듭 말하고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의 진실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26).

모세 시대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고 해야 하는데

현재형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27)라고 말씀하십니다.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었어도 살아 있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영원성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영원한 생명도 믿을 수 있고 또한 부활도 믿을 수 있습니다.

 

4. 28-44: 가장 큰 계명

율법학자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는

그분이 범상치 않은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과 관계하여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여겨졌던 질문을 예수께 여쭙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28)라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4-5절의 쉐마 본문과 레위기 1918절의 말씀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제시하십니다(29-31).

 

모든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모든 계명은 사랑에서 나오고 또한 사랑을 향합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입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시켜 놓았고,

이웃의 범위를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으로 한정시켜 놓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며

이웃에는 이방인과 원수까지도 포함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율법학자는 이 대답에 공감을 표합니다(32-33).

예수님은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34)고 칭찬하십니다.

그런 마음이면 머지 않아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일 것이 분명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누구도 예수께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34).

그제서야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제자들과 무리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편 1101절을 인용 하시면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에 대해 다윗이 내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일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35, 37).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해서

다윗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38).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사람들을 위해 섬겨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하여 권세를 휘두르고 이익을 도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율법학자들 중에는 가장 큰 계명에 대해 질문한 사람과 같이

진실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위선적이고 권위적이며 타락해 있었습니다.

 

논쟁과 대화를 마치고 나서 예수님은 성전 내부에 놓여 있던 헌금함 맞은 편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 보십니다(41).

겉으로 보아도 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란 듯이 거액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행색이 초라한 여인이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42)를 넣습니다.

이 동전은 오늘로 치면 1센트짜리 동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그것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그 과부가 가장 많은 것을 드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43-44).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 중에서 얼마나 많이 드렸는가가 중요합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전부를 드렸고, 부자들은 일부를 드렸기에

그 여인이 더 많은 것을 드린 것입니다. 


 

묵상:

우리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분이 어떤 분이지에 대해 알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대다수가

그분의 영원하시며 전능하신 속성을 무시합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우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사이즈로 축소시켜 믿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의 영원성과 초월성을 믿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을 깨뜨리십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2-16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1)"

      한 서기관의 질문이 있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워진 계명 중에 첫째, 둘째가 된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가?
      또한 나는 나의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너무나 큰 은혜를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만 여전히 사랑을 받기만
      할 뿐 그 사랑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서툰것을 느끼게 된다.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인해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 나아가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김성민목사 19-02-1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막12:7-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시니라” 잠언 16장 9절의 말씀을 아버지께서 언제나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꼭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항상 착각에 빠져 살았다. 내 생각, 내 계획, 지금까지 인생의 선배들이 걸어왔던 길을 참고하여 성공을 꿈꾸며 살았다. 그런데 현실은 항상 처참한 패배 뿐이었다. 내 삶에 하나님의 계획은 없었고 나의 탐욕적인 계획만 있었을 뿐이다.

      오늘 묵상 말씀에 등장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마치 과거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되겠지, 이렇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가. 착각은 자유다. 그리고 그 착가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 버릴 수 있다.

      세상 만물 그 어느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 아닌게 있는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그런데 날마다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믿음으로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축복이 다른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