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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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토) 마가13장_그런즉 깨어있으라
- 느헤미야강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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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3절: 성전이 심판 받을 날
저녁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시는데
제자들이 성전의 위용과 성전을 지은
대리석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합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면
성전과 성전 벽의 대리석에 석양이 비치어 마치
금덩이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종교의 내면을 보시고 탄식하셨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2절)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전 동편에 있는 올리브 산에 이르러
성전이 보이는 곳에 앉아 계십니다(3절).
그 때 네 제자가 예수께 다가와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이고
그 일이 일어날 때에는 어쩐 징조가 있겠는지 알려 달라고 여쭙니다(4절).
그들은 성전이 심판 받아 파괴 되는 것이 세상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대해 몇 가지 말씀으로 주십니다.
먼저 여러 가지의 혼란과 전쟁과 지진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진통의 시작”(8절)일 뿐이라고 하십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먼저 진통이 오듯 마지막 날이 올 때도
그런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해산의 진통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듯 마지막 날의 진통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9, 12-13절).
예수님은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11절).
그것을 알고 성령께 의지하는 사람은 박해 받는 동안에도
복음 전파의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성전 파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4절).
예루살렘 성전이 심판 받아 파괴되는 날은 곧 오겠지만
그것이 마지막 날의 징조는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은 다니엘 9장 27과 11장 31절
그리고 12장 11절에 예언된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서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공격 당하여 부정한 것들이
성전을 황폐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 때가 오면 도피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전세가 기울어졌기 때문에 맞서 싸우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 밴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17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도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18절)고
말씀하신 이유도 도피하기에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에 당할 환난이 유례 없을 정도로
극심할 것이라고 하십니다(19-20절).
그와 같은 혼란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선택받은 사람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20절).
또한 이러한 혼란이 깊어질수록 그리스도와 예언자를 자처하는
영적 사기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22-23절).
2. 24-37절: 마지막 날
이어서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13장 10절과 34장 4절을 인용하시어
그 때가 되면 우주적인 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24-25절).
그런 다음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26절)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보았던 마지막 날의 사건입니다(단 7:13-14).
예수님은 다니엘의 그 예언이 당신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그 때 온 우주의 왕으로서 임하실 때 인자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선택된 사람들”(27절)을 모을 것입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짐작하듯
이런 징조를 보면 마지막 날이 가까이 온 줄로 알고 깨어야 합니다(28-29절).
30-31절에서 예수님은 앞에서 언급 하셨던
성전 파괴의 사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그 “세대가 끝나기 전”(30절) 즉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오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사람들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대해
여러 가지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관심의 정도와 의문의 양에 비하면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대해 너무도 말을 아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언젠가 인자가 온 우주의 영원한 왕으로서 오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전에 우주적인 격벽의 징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으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대해 미리 안다고 하여
지금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매일 매일의 깨어 있는 삶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을 예측하고 예언한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단호히 못을 박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32절)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알 수 없지만
“그 달과 그 해”는 알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기본적인 어법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그 날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깨어 있는 것”뿐입니다(33절).
여기서 예수님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을 비유로 삼아 말씀하십니다(34-36절).
주인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면 유일한 방책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언제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거룩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묵상:
우주의 운행에 시작이 었었던 것처럼 마지막도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도 시작점이 있었듯 종착점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탄생이 있었듯 죽음도 있을 것입니다.
끝은 옵니다. 인생에도 오고 인류의 역사에도 오며 우주에도 옵니다.
창조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끝은 파국이며 파괴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소멸됩니다.
하지만 창조자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이며 완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의 계획에 따라
우리 각자의 인생과 인류 역사와 우주의 운행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많은 환난과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날 때 진통이 먼저 오듯
완성과 새로운 창조가 오기 전에 우주적인 진통이 먼저 올 것입니다.
그 때 창조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할 것입니다만,
믿는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이를 때까지 오늘 그리고
내일 하나님과 함께 거룩하게 살기를 힘쓸 것입니다.
그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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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2-17
-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막13:11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두렵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른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루는 죽음을 앞둔 어느 권사님의 임종예배를 드려달라는 전화를 받고 급히 권사님 댁으로 가야할 때가 있었다. 나는 무슨말씀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그 때 기도하면서 오늘 말씀을 떠올렸다. “하나님 나는 몰라요 성령님께서 말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옵소서.” 임종예배를 마치고 얼마후 권사님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나는 내가 무슨 말씀을 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믿는 것은 성령님께서 함께하셨고, 말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는 말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의 표정, 몸짓에 나를 만나는 사람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나 뿐이겠는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만난다. 그런데 나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두렵다. 그럴 때마다 오늘의 이 말씀을 꼭 붙잡는다. 오늘도 내가 만나는 사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 성령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성령님이 함께 하시다는 그 사실에 큰 위로와 감동을 받는다. 그거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