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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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금) 누가2장_하나님나라의 반전

  • 느헤미야강
  •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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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1: 거대한 아이러니

예수께서 태어나실 즈음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제국 내의 모든 국민에게 호적 등록을 하라는 칙령을 내립니다(1).

그것은 제국을 통치하는 한 방법이었고

또한 세금 수입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호적 등록을 하려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가야 했으므로

요셉은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해산할 날이 이르렀는데,

여관에 방이 없어서 어느 집 헛간에서 해산을 하게 됩니다(7).

당시 베들레헴은 기껏해야 오백 세대 정도의 작은 동네였기에

여관도 변변치 않았을 것입니다.

태어난 아기는 짐승의 먹이통을 요람 삼아 누우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상징입니다.

세상의 구주로 오신 분이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없는 마을의

어느 헛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날 밤에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구주”(11)가 나셨다는 소식을 전해 줍니다.

당시 목자는 오늘로 따지면서 불법체류 노동자들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양을 치는 것은 당시로서는 최악의 3D 업종이었습니다.

그 일 자체가 안식일을 지키기에 쉽지 않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은 천하게 취급되었습니다.

거친 돌산과 광야로 옮겨 다니면서 양들을 먹여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몸에서는 늘 땀냄새와 짐승 분뇨 냄새가 풍겼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목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사고치고 도망갈 수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이

제일 낮은 곳에 있던 사람에게 가장 먼저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어마어마한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렇게 우리의 기대와 기준을 넘어섭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12)라고 전합니다.

그리스도 주님”(11)이 나셨는데,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표징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이라니!

그 때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 하늘 군대”(13)

즉 많은 천사들이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목자들의 눈에만 보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천사들의 찬양은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잘 담아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평화”(14)입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며,

그분은 평화의 길(1:79)을 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천사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요셉과 마리아와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냅니다(16).

그들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고,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습니다”(19).

목자들은 그 모든 것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팔일째 되는 날에 예수님에게 할례를 행하고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지시한 것입니다(21).

 

2. 22-40: 두 노인의 기쁨

율법에 의하면, 아들을 낳은 여인은 삼십 일 동안 부정합니다(12:1-4).

삼십 일이 지나면 율법 규정에 따라 정결례를 행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하룻길도 되지 않는 곳에 있었기에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서 정결례를 다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때가 이르자 그들은 정결례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율법 규정에 따라 제물을 드립니다(24).

 

그 때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습니다”(25).

이스라엘의 위로란 메시아를 통해 구원해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즉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6).

하지만 나이 늙어 죽음이 가까웠음에도 그 예언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성전에 갔는데,

때마침 아기를 데리고 들어오는 요셉과 마리아를 마주칩니다.

시므온은 그 아기가 메시아로 나신 분임을 알고는

받아 안고 주님을 찬양합니다(29-32).

그는 그 아기가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32)이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시므온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의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33).

자신들 밖에 모르는 비밀을 시므온이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했을 것입니다.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한 후에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 아기가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다“(34),

그래서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35)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35)라고 예언합니다.

예수께서 당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하는 것을 보려면

육친의 마음은 칼로 찌르는 듯이 아플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대로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에 설 때까지 아픔을 견디며 지켜 봅니다.

 

그 때 성전에서 거의 평생을 지낸 안나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36).

히브리어 이름은 한나인데, 헬라어로 표기하여 안나가 된 것입니다.

그는 결혼 생활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84세가 되도록

성전에서 밤낮 금식과 기도로 지내 왔습니다.

당시 여성들의 평균 결혼 나이를 고려하면

20세 초반에서부터 60년을 그렇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안나는 그 모든 모습을 지켜 보며 하나님께 감사 드렸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옵니다(39).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40)습니다.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모두 건강하게 자랐다는 뜻입니다.

 

3. 41-52: 가출과 출가

유대인 남성들은 한 해에 적어도 세 번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보통 한 해에 한 번이라도 가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요셉도 가난한 사람이었기에 한 해에 한 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다녀 오곤 했습니다(41).

예수께서 열두 살 되는 해에도

요셉은 온 가족을 이끌고 예루살렘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당시 순례객들은 떼를 지어 움직였습니다.

강도나 도둑들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움직이다가 저녁이 되면 가족별로 모여 잠을 잤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일행에 없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아이들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저녁이 되어 찾아보니 없었던 겁니다.

그들은 황급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아이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45).

하지만 어디에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사흘 동안 찾아 다니다가 아이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성전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어느 율법학자의 가르침에 푹 빠져 있는 아들을 보게 됩니다(46).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역정을 냅니다(48).

그랬더니 예수님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49)라고 반문합니다.

부모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나중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았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51)습니다.

 

세속적 기준으로 한다면 이것은 열두 살 소년의 가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로 본다면 이것은 예수님의 출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마리아의 아들이었지만

그분의 진정한 정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라

육친을 떠나야 할 날이 있음을 아셨고,

그것을 육친에게 암시한 것입니다.

자식을 떠나 보내는 일은 시므온이 예언했던,

칼이 마음을 찌르는 것”(1:35)과 같은 일입니다.

 

묵상:

하나님은 반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시는 일들은 우리에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 중에서 메시아의 부모를 고르셨고,

가장 이름 없는 동네에서 나게 하셨으며,

가장 초라한 모양으로 오셨고,

가장 비천한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가치관이 뒤집어 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거꾸로 보아야만 제대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거꾸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꾸로 사는 삶을 보여 주였고 또한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반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2-26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2:7)"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야기는 매년 성탄 시즌이 되면 듣게 된다.
      이 말씀을 듣고 또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겸손 그 자체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된다.
      이 땅이 주인으로 오신 그 분께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특별히 오늘 말씀가운데 예수님의 오심이 곧 겸손 그 자체임을 보게 된다.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오실 수도 있었지만 낮은 자들과도 함께 하길 원하셨고
      그들에게도 복음이 되어주시기 위하여 낮은 모습으로 오셨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셨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을 해놓고도 크게 칭찬 듣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또 높은 사람이 되어서 모두고 우러러 봐주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만이 아니라 겸손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나 자신을 높이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겸손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위대하신 분이다.
      이러한 고백이 나의 삶 가운데 늘 함께 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