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23(토) 누가3장_회개의 열매
- 느헤미야강
- 2019-02-24
- 448 회
- 2 건
1. 1-20절: 요한의 활동
2장 1-2절에서도 그랬듯이 누가는 3장 1-2절에서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을 배경 삼아 예수님의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예수님 한 분에게 일어난 사건은
온 세계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황제로 있을 때 태어난 요한은
디베료가 황제가 다스리던 기간(주후 14-37)에 활동을 시작합니다.
디베료가 황제가 된 후 “열다섯째 해”(1절)라고 했으니
주후 29-30년 경에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요한과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팔레스타인을 다스렸던 헤롯 대왕이
주전 4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 자식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고
로마 황실은 팔레스타인을 분할하여 자녀들에게 나누어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분봉왕”(1절)이라고 부릅니다.
유다 지방을 분할받은 헤롯 아켈라오는 주후 6년에 세상을 떠났고
로마 황실은 총독을 파견하여 직할 통치를 합니다.
요한이 활동을 시작할 즈음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었습니다(주후 26-36).
갈릴리 지방은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대제사장은
가야바가 맡고 있었으나, 그의 장인이며 은퇴한 대제사장 안나스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2절)습니다.
요한에게 내린 하나님의 말씀은 디베료가 통치하는
로마 세계 전체에 관련이 있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자랐고 30세쯤 되었을 때 광야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그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3절)을 베풀었습니다.
원래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 세례를 유대인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의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8절)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8절)고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발등에 떨어졌다고 경고하면서(9절)
회개하고 그에 따른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이사야가 예언했던(40:3-5)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고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4절)였습니다.
그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회개의 열매”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묻습니다(10절).
그러자 요한은 여분의 옷이나 음식을 가진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답합니다(11절).
세리들에게는 “정해준 것보다 더 받지 말라”(13절)고 가르칩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할당된 세금액에 자신의 몫을 더하여 동족을 착취했습니다.
그것을 당연한 관례로 여기던 때였기에 요한의 요구는 특별했습니다.
군인들에게는 그들에게 주어진 힘으로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라고 합니다(14절).
로마의 식민지 하에서 군인들은
폭행과 착취를 허락받은 받은 사람들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랬기에 요한의 요구는 실천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개는 이렇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So bad!” 하며 마음으로 뉘우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선 직업 현장에서 회개의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업 현장입니다.
그렇기에 직업 현장에서 회개한 사람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고
일 처리에 있어서 정직해야 하며 금전 관계에 있어서 깨끗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직장 바깥에서도 늘 하나님의 기준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요한이 활동을 시작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요한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15절).
그것을 알고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며
자신보다 “더 능력있는 분”(16절) 즉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의 예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요한이 생각한 “성령과 불”은 심판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17절).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내린 “성령과 불”의 세례는 심판이 아니라
새로운 구원의 사건이었습니다.
2. 21-38절: 인류 역사의 정점에서 오신 분
갈릴리 나사렛에서 때를 기다리고 계시던 예수님은
요한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21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은 형체로 그분에게 내려 앉으십니다.
그리고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22절)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막혔던 하늘을 여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요단 강에서 온 인류의 죄를
당신의 어깨에 짊어지셨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십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잠시 물러 나십니다.
그러다가 헤롯이 요한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자(18-20절)
예수님은 당신의 때가 왔다고 생각하시고 활동을 시작하십니다.
그 때 그분은 “서른 살쯤”(23절) 되었습니다.
공적 활동을 개시한 것은 29-30년 사이인데 태어난 해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그분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습니다.
누가는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족보를 소개하면서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요셉의 아들이었다”(23절)고 적습니다.
실제로는 요셉의 아들이 아나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에도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는데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에 이릅니다.
반면, 누가가 기록한 족보는 요셉으로부터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런데 마태의 족보는 다윗에게서 솔로몬으로 이어지는데,
누가의 족보는 다윗에게서 나단으로 이어집니다(31절).
이 차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누가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라는 것입니다.
즉 요셉은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유다 지파의 후손이고
마리아는 나단으로 이어지는 유다 지파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요셉은 솔로몬파 유다지파 후손이고
마리아는 나단파 유다지파 후손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요”(24절)는
“요셉은 엘리의 사위요”라는 뜻이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에 사위도 아들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적으면서 마태는 요셉에게만 집중하고
누가는 마리아에게만 집중한 것을 고려하면 이 설명이 옳다 싶습니다.
누가는 이 족보를 통해 예수님의 탄생이 당대의 역사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 역사에 관계되는 분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묵상:
회개는 세례 요한에게도, 예수님에게도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이요
그로 인해 말과 행동에 죄악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자신의 삶이 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희망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마음의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면 눈빛과 말과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직업 현장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구체적인 삶의 변화 없는 회개의 고백은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역겹고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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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2-26
-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눅3:38)"
오늘 말씀 가운데 23절 이하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온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태복음의 족보와는 다르게 예수님으로 부터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또한 아브라함 부터 시작했던 것과는 다르게 하나님께로 까지 그 족보
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예수님의 족보를 하나님으로 까지 이으면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인데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 보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우리의 모든 신앙이 출발한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그러한 예수님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예수님의
족보를 하나님께 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님 뿐 만 아니라 우리 또한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까지
올라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된줄 믿는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심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어떤 세상의 어려움도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하는 어려움보다 더 큰 분이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고 그 크신 분이
곧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믿음을 통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길 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삶의 모습을 통해 모범을 보였듯이
나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로써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주님의 종이 되길 기도한다. -
- 김성민목사 19-02-26
-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요3:3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나와 요한의 소리를 듣고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 세례는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전의 모든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한 나라의 왕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다시 찾았다면 왕은 아들을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올 것이다. 그리고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과 보석들로 아들에게 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왕자로써 앞으로는 왕으로써의 말과 행동을 하도록 배울 것이다. 더이상 아들의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세례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큰일 날 일이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면 왕의 말과 행동을 하도록 배워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모습은 모두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이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원수가 조롱할 것이고 결국엔 왕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날마다 회개하며 날마다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