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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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목) 요한1장_예수님에 대한 증거들

  • 느헤미야강
  • 20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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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쓴 책입니다(20:31).

그러므로 1장부터 요한복음은 예수님께 모든 초점을 맞추면서

그분을 보라고 모든 독자를 초청합니다.

요한복음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입체적으로

많은 관점에서부터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1. 1-18: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십니다(1~3).

이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 자신이셨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이 소개하려는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그 발 앞에 복종케 하실 주재(the Lord)라는 사실을 알고 섬기십니까?

 

그분은 빛과 생명이십니다(4~10).

주님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지만

세상이 눈이 어두워 빛을 보지 못하는 소경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상태, 타락한 인간의 지성의 상태입니다.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다. 오직 죽음 뿐입니다.

거기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오셨습니다.

그들이 볼 수 없었기에

하나님은 그 빛을 증거하는 자를 보내셨으니 그가 요한입니다(6~8).

 

그분을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습니다(11~13).

세상은 자기 세상에 오신 그들의 왕을 거부하지만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지만 그분을 믿는 것은 자연적 현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13).

오직 하나님이 낳은 자들만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자기가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됩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시는 분이십니다(14~18).

육신을 입고 인간이 되셨지만,

눈을 뜬 자들은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었고 그 영광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며

거기는 은혜와 진리(인자와 성실)가 충만하였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품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조금도 하나님의 신성이 부족하지 않게

충만하게 드러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충만하심은 흘러넘치고 다함이 없어서

누구든지 그분께 나아가는 자들은 은혜를 받고 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나아가서 그런 은혜를 매일 매순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성과 영광, 그리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주님께

우리는 날마다 나아갈 수 있으며

거기서 은혜와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아십시오.

 

2. 19-28: 세례 요한의 증언

 

잠시 요한 자신에 대한 증거가 나옵니다(19~28).

요한은 구약의 선지자가 끊어지고 400여년 만에 등장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을만큼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부터 보냄받은 유대인들은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는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습니다.

단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는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가 세례를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 뒤에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알았던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은 그가 모태에서 예수님을 환영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해야 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그 자신도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그는 자기가 어떤 자인지를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이 한 없이 커져보이는 유혹과 위험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3. 29-34: 예수의 세례식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29~36).

요한은 이튿날 주님이 지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요한이 알았던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 속에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간

어린양과 같이 세상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는 그리스도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스도께 세례를 주었습니다.

죄인이 아니심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으심은

스스로 죄인과 같이 여김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실 것에 대한 전조와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세례는 모든 이전부터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인류를 위한 죄를 전가시키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제단을 통해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게 됩니다.

그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머물렀으며 요한은 그것을 보았고

그분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임을 알았습니다.

요한은 또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3:17).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34).

 

4. 35~51: 예수의 제자들

 

그분은 메시아입니다(37~42).

요한의 두 제자가 요한이 주님을 가리켜 증거하는 말을 듣고

주님을 따라가 함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안드레와 또 한 사람은 아마 요한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분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가진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그들의 선생이 말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을

아직은 깨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난 그들은 곧 자기들의 형제에게 가서 그 사실을 말했습니다.

안드레의 형제 베드로가 주님께 갔을 때

주님은 그에게 장차 게바라 할 것이라고 하심으로써

그가 중요한 교회의 초석이 될 것인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십니다(43~45).

주님은 이튿날 빌립을 직접 제자로 부르셨는데,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에게 가서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그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하나님이며, 메시아시지만,

또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완전한 사람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등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참 경건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나다나엘은

주님을 보고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왕으로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를 거부하였습니다(11).

요한복음은 이렇게 환영 대신 거절을 받으신 왕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특권과

그분의 충만하심으로부터 은혜와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삶이 주어집니다.

모든 것은 그분에 대한 우리의 태도, 시각,

그리고 그분을 영접하고 믿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문제는 요한복음이 증거하는 그분에 대한 증거들을 믿을 것인가 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언제나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증거를

온전하게 믿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모든 성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김성민목사 19-03-2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또한 임마누에이라 함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우리는 구원자이시고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심도, 우리와 함께 계심도 세밀하게 경험하지 못한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단지 알고 만 있기 때문이다.

      믿는 다는 것은 내 마음에 100% 확신인 것이다. 알고 있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는 사람은 목숨을 걸지 않지만 믿는 사람은 목숨을 건다.
      모래속에 금이 함유되어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큰 돈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모래에 목숨을 건다.

      예수님의 이름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에 구원이 있음을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 사람이다. 믿는 다는 것은 바로 그런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도 나의 죄를 씻기심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에서 시작되니 나의 오늘도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일 믿는것에 목숨을 걸어야겠다.
    • 이형원전도사 19-03-23
      "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잇힘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1:34)"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조연으로써의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들로 부터 선지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는 자기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 이상의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그는 그렇게 철저하게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았고 그 분만을 위한 사역을 감당함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그래서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고 자신보다 낫다고 여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질투와 시기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가? 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대답은 명백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많은 상황에서 나를 먼저 드러내려 할 때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요한처럼 철저하게 자기를 드러내기 보다는 예수님을 위한 사역을 하길 원한다.
      내가 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길 원한다.
      나에게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으로 요한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