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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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월) 요한10장_선한목자
- 느헤미야강
- 2019-04-01
- 446 회
- 2 건
요한복음 10장에 기록된 말씀은
에스겔서 34장에 기록된 말씀의 배경에서 읽어야
그 뜻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목자와 양의 비유는 구약성경 안에 자주 나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이 비유에서 목자는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하나님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또한 목자라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혹은 예수님을 “목자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을 목자로 세운 이유는 양들을 돌보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양들을 통해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폐하고
당신께서 직접 목자가 되겠다고 하셨고(15절)
또한 참 목자로 다윗을 다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23절).
그것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를 보내어 목자가 되게 하겠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에스겔의 예언이
당신에게서 이루어졌음을 밝히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1-5절).
지금 당신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을 “양이 드나드는 문”(7절)에 비유하십니다.
양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풍성한 양식을 보장 받는 곳이 우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그 우리를 드나드는 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9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10절)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목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생명을 주실뿐 아니라
그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1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에스겔 34장에 나오는
“악한 목자들”을 생각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악한 목자들은 자신을 위해 양을 희생시키는데,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킵니다.
알고 보면 어리석은 목자입니다.
세상에 어느 목자가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11절)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16절)까지 이끌어 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영혼의 구원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시는 이유는 양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원하여 기꺼이 자신의 것을 드리게 만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런 까닭에 아들을 사랑하십니다(17절).
바로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유대인들 사이에 또 다시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감동하여 믿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분을 미쳤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속 시원히 정체를 밝혀 달라고 청합니다(24절).
예수님은, 이미 충분히 말했고 또한 충분히 보여 주었는데
믿지 않으면서 무엇을 더 보여 달라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속한 양이 아니었기에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답하시면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30절)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이 몇몇 유대인들의 분노를 자극하였습니다.
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 하자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을 믿으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38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 손을 벗어나
요단 강 건너 쪽으로 가셔서 그곳에 잠시 머무르십니다.
묵상: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양을 위해 생명을 바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기르는 이유는 양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함입니다.
목자가 양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용도가 다하기 전까지의 일입니다.
용도가 다하면 잡아 먹거나 팔아 치웁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양에 대한 사랑이 많은 목자라 해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놀랍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어떤 유익을 위해 우리를 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는 어리석은 목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아들을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어리석은 사랑 앞에서 무한히 작아지는 아침입니다.
또한 이 놀라운 사랑으로 인해
내 자신이 무한히 귀하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면
나는 그것으로 인해 더할 수 없이 고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벅차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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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4-02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음을 나는 믿는다. 누가 나를 위해서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어줄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 주셨다. 그러니 그 분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는데 그것 만으로도 그분을 따를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시니 그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분이 원하시고 바라는 대로 살아가능 것도 마땅히 해야할 도리이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이제는 내가 십자가의 사랑에 응답할 차례인 것이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나의 선한 목자시니 이끄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
- 이형원전도사 19-04-05
-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3)"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목자를 따라 나서게 된다.
목자 또한 자신의 양을 알아보고 그 양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간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양이 되는 줄 믿는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분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나온다.
이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따라 나서지 않았기에 그 분의 양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아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인도하는 곳으로
기꺼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그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주신 선한목자로 알고 따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 분을 나의 선한 목자로 안다면 그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따른 삶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그 분의 음성보다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살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
언제나 나의 뜻 나의 생각이 아닌 그분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므로
예수님을 나의 선한목자로 여기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