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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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수) 요한12장_십자가가 영광입니다

  • 느헤미야강
  •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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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에 있던 나사로의 집에 가십니다.

나사로 남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해 큰 잔치를 벌입니다.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다가와

그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밝을 닦습니다.

그러자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그것을 본 가룟 유다는 삼백 데나리온

(한 성인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나 되는

값진 향유를 허비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5).

그러자 예수님은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7)라고 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에 이끌려 행동한 것인데,

그것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사랑에는 이런 기적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8)라고 덧붙이십니다.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그 소식을 들은 무리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예수님을 맞으면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기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기를!”(13) 하고 외칩니다.

이것은 시편 11825-26절의 말씀으로서

메시아를 환영하고 찬양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올라타셨습니다.

그것은 스가랴 예언자가 메시아를 두고 했던 예언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뒤에야”(16)

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야

그분이 어린 나귀를 타신 이유를 깨닫습니다.

무리가 이렇게 반응한 이유는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일로 인해

믿는 이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순례 온 그리스 사람들이

(유대인으로서 그리스 도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들은 빌립(‘빌립은 히브리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이 그를 찾아간 것입니다)을 찾아가

예수님을 뵙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21).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23)고 말씀하십니다.

영광을 받을 때는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영광 받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분은 이어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24)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희생이 될 것임을 암시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또한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보존할 것이다”(25)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것

이 땅에서의 생존만을 관심사로 삼고 살아가는

자기중심적 태도를 말합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것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밀알이 썪어지는 것과 같이

자신의 인생을 내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사신 방법입니다(26).

그렇게 사는 사람은 이미 영생에 이른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당할 고난을 내다 보십니다.

인간적으로는 그 고난을 피하고 싶지만 그것을 위해

당신이 보냄 받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28)라고

기도하십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께서 마침내 지키셨음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이렇게 기도하실 때에

내가 이미 영광되게 하였고,

앞으로도 영광되게 하겠다”(29)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의 철저한 순종에 대해

아버지가 전적인 승인으로 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의 역사에 대해

하늘과 땅이 마주쳐 우주적인 찬양이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 그리고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표징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중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예고된 바와 같습니다.

죄로 인해 마음이 어두워지면

아무리 놀라운 일을 보여 주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37-43).

예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오신 것은 구원하러 온 것인데(47),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멸망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가운데서 벗어날 길을 여셨습니다.

그런데 끝내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면 멸망을 선택하는 것이고

스스로 심판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묵상:

우리는 모두 영광을 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높아지는 것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분의 형제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능력을 널리 알려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높임 받기를 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로마군을 몰아내고

영광스러운 다윗 왕국을 회복시키고

그 나라에서 영원히 다스리기를 소망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영광이요,

그것이 그분을 따르는 자신들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로 생각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섬기는 것이 당신의 영광이라고 믿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고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믿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진심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밀알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밀알의 영광은 귀한 그릇에 싸여 고이고이 보존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땅에 떨어져 썩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밀알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배하고 섬긴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도 영광에 대해 헛다리를 짚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봅니다.

예수님을 섬긴다면 그분과 같은 자리에서 그분처럼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반대 방향을 보고 두리번 거립니다.

낮아지기를 꺼리고, 섬기기를 불편해하며,

희생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아침에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 김성민목사 19-04-0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한국 마포구에 가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다.
      한국에 선교하기 위해 오신
      외국인 선교사님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 곳에 가면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셨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선교사님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가면 유난히
      마음에 울림을 주는 무덤이 있다.
      그곳은 바로 선교사님들과 함께 묻히신 가족무덤이다.
      100여년 전 미지의 땅 조선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온 부부, 가족이 그들의 생을 다할 때 까지
      이 곳에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한 알의 밀이
      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외국인 선교사님과
      그의 가족들이
      대한민국에 한 알의 밀이 되어
      이 땅에 묻힌 것이다.
       
      그 분들의 희생과 사랑 덕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선교사님과 그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그저 감사를 드릴 뿐이다.

       이제 그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할 때이다.

      아직도 100년 전 조선처럼
      이 당에는 예수님의 복음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의
      기도와 선교로
      대한민국에 복음의 밀알을
      심은 것처럼
      우리도 복음의 씨앗을 품고
      세상에 나아가
      뿌려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9-04-09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있을 때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는 장면이 말씀에 나온다.
      이 일을 두고 가룟유다는 그 향유를 낭비한 여인을 비판한다.
      그 비판의 명분은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나누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일 이었음을 말씀하심으로
      그 여인의 행동에 대하여 지지하시는 것을 보게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하여 가룟유다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는 도둑이라 그 돈을 탐내서 한 이야기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 중에 내 진짜 목적과 명분이 다를 때가 있다.
      이러한 말에는 그 어떠한 능력도 있을 수 없고 다만 남을 속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가난한 자를 위한다면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기 앞서서
      먼저 자신의 것을 내놓는 모습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나는 말로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단순한 입술의 말이 아니라 나의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사랑이 표현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