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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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목) 요한13장_사랑, 새 계명
- 느헤미야강
- 2019-04-04
- 417 회
- 2 건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당신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눕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나눈 마지막 식사를 두고 요한은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고 말합니다.
그 식사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에
끝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행동이었다는 뜻입니다.
식사를 나누시던 중에 예수님은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4절)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셨”(5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노예가 주인에게
혹은 주인의 손님에게 하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당신 자신을 낮추어
종의 역할을 떠맡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며
또한 십자가에서 당신의 전부를 내주신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차례가 오자 그럴 수 없다고 사양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7절)라고 답하시며
당신의 섬김을 받아 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다시 만류하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8절)고 답하십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드려질 당신의 희생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9절)라고 청합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몸 씻는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10절)고 답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신 다음
예수님은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당신이 행한 것처럼
서로 낮아져서 섬기라고 부탁하십니다(12-17절).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은 우선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우리가 따르고 배워야 할 삶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선생의 자리에서 내려와 종의 자리에 섰다면,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더 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당신을 팔아 넘겨 죽게 할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
즉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2절)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시편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18절)
당신의 예언대로 이루어지면
‘내가 곧 나’임을 알라(19절)고 하십니다.
‘내가 곧 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꿰뚫어 보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은
“마음이 괴로우셔서”(21절) 제자들에게 마음을 털어 놓으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곧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은 이”(23절)에게 고갯짓을 하여
그게 누구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26절)라고 하시면서 유다에게 빵조각을 건넵니다.
그 때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27절)고 했습니다.
악마는 먼저 죄악에 대한 욕구를 우리 마음에 불어 넣고 나서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 보고 있다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우리의 마음을 장악합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27절)고 말씀하십니다.
유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넘어갔습니다.
회개의 때가 이미 지나 버린 것입니다.
유다는 빵조각을 받고 나서 밖으로 나갑니다.
요한은 여기서 “때는 밤이었다”(30절)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는 참 빛이신 예수님에게서 영원히 떨어져 나감으로써
영원한 어둠 안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유다가 밖으로 나가자 예수님은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31절)고 말씀하십니다.
“영광을 받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또한 모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아들의 영광이요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가룟 유다가 영원한 밤을 선택하여 떠나간 이상
십자가는 이미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미” 영광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34절)고 부탁하십니다.
그분은 이 부탁을 “새 계명”이라고 부르십니다.
사랑의 계명은 율법에도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새 계명”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구절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 그분의 사랑은 전에 없던 완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그분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35절)이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생각하시면서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33절)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어디로 가시는지 다시 묻습니다(36절).
예수님은 다시금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36절)라고 답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37절)라고 답합니다.
이 말에 예수님은,
그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당신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답하십니다(38절).
묵상:
우리는 사랑을 모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조잡한 모조품이요 불량품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 순수한 사랑, 다함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우리는 갈구합니다.
그런 사랑이 없이는 우리의 존재는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모릅니다.
사랑에 무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사랑으로는
우리의 내적 갈망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그 사랑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낮아져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퍼 주는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비로소
내적 허기를 채울 수 있고 내적 갈증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짝퉁 사랑을 버리고
진품 사랑을 행하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은 새롭습니다.
겉모습은 동일하지만 내용물이 바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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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4-05
-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13:2
마귀는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넣었고 그 생각은 곧 현실이 되고 만다. 이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내 안에도 마귀의 생각이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분명 예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지만, 시시 때때마다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보호하시지만 마귀의 생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갈 때도 있을 수 있다. 참 무섭고, 두려운 말씀이다. 가룟 유다는 이 생각 끝에 예수님을 판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유다보다 더 못한 사람일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보다 예수님이 아닌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노력하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생각도 살피며 예수님의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노력해야겠다. -
- 이형원전도사 19-04-09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전에 세상을 떠날 것을 아시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누구나 일시적인 사랑 혹은 일시적인 도움은 베풀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항상 변한다. 자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나는 과연 얼마나 그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정말 그 사람의 모습과 상관없이 주님의 사랑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봤을 때 그렇지 못한 모습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섬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