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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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목) 고전2장_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
- 느헤미야강
-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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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인간의 지혜나 화려한 언변으로 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했음을 상기시킵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지적 우월감으로 인해
바울은 “약하였고,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3절).
하지만 그는 인간의 지혜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세상적인 지식과 논리에 있어서 바울 자신은 누구에게 꿀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바탕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두게 하려고”(5절) 복음을 어리석은 말로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지혜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6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숙한 사람”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인간적인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실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말할 때는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존해야 했습니다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지혜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6절).
그것은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7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10절).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혹은 아무리 큰 권력의 자리에 앉는다 해도
하나님의 지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경륜”(10절)까지 살피며
또한 우리의 내면 깊은 곳까지 살피시는(11절)
성령을 통해서만 그 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12절).
그렇기에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인 것이고 또한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나 논리나 언변으로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13절)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육에에 속한 사람”(14절) 즉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인간의 지혜나 논리에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기”(14절) 때문입니다.
반면, “신령한 사람” 즉 성령의 감화와 감동 안에 사는 사람은
이런 일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지혜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16절).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묵상:
믿는다는 것은 믿기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믿기 이전의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14절)이라고 부릅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세계관 안에서 논리와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는 영적 세계를 인정하고
그 영적 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세계를 알게 하고 보게 하고 체험하게 하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전에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보게 합니다.
그 세상을 보고 나면 자연인들의 논리와 이론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효력을 멈추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적인 논리와 이론을 접어 두고 성령의 영감을 구합니다.
오늘도 신비한 영적 세계를 보고 듣고 만지며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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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6-07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바울은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많은 교육을 받았고 논리적인 사고 또한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말의 지혜로 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얼마든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지혜롭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복음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의지했던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곳에 하나님의 복음이 뿌리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혹은 세상적으로 다소 미련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을 믿고 나아갈 때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해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나는 과연 사람의 지혜로 하는가 아니면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가 돌아보게된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물론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연구와 깊이 있는 묵상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의 지혜를 자랑하려는 것이 되지 않도록 유혹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역사 하심으로 말씀이 말씀이 될 수 있음을 안다면 더욱 기도해야 할줄로 믿는다.
나의 능력이 아니다. 나의 말 재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함을 고백하게 된다.
언제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심을 인정하고 그 분을 의지하는 사역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쓰임 받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