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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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금_ 고전9장_복음은 자기 포기, 희생입니다
- 느헤미야강
-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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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8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연약한 지체를 위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양보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무슨 약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시에 바울 사도를 비방하던 사람들(3절)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기에
독신으로 살고 손수 돈을 벌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라고 헐뜯었습니다(4-6절).
바울은 일반적인 예와 성경의 예를 들어
자신에게도 생활비를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밝힙니다(7-11절).
그렇지만 그 모든 권리와 자유를 반납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유는
오직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그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12-15절).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매인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자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6-17절).
이 말은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강력하여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복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복음 전하는 일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아무런 조건 없이 복음을 전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18절).
바울 사도는 그것이 자신이 받을 보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19절)라고
자신의 삶의 원리를 밝힙니다.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상대방의 눈높이와 문화와 수준에
자신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20-22절).
그렇기에 그는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22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한”(23절)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바울은 운동선수의 예를 사용하여 논지를 이어갑니다.
경기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모두 상을 받는 것이 아니듯
믿는다고 해서 모두 “복음의 복”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24절).
그러므로 운동선수들처럼 우리도 자신의 욕망을 절제 하면서
잘 훈련하여 우리의 경주에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나무로 만든 월계관을 위해 뛰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25절)을 위해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 몸을 쳐서 굴복”(27절)시킨다고 했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욕망을 절제하며 훈련하는 것처럼, 믿음의 경주도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이 쓴 마지막 말씀 즉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27절)라는 말씀은
저같은 목사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복음 전도자로 나서서 목회 혹은 선교를 하다가 미끄러져서
“버림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목사나 선교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여정이 숨 다하는 순간까지 지속하도록 늘 깨어 살아야 합니다.
묵상: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구원 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가장 비천한 자리에 내려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분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떤 대가도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셨는지를 안다면,
우리 또한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와 안전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하루, 자신을 돌아 봅니다.
오늘도 나의 자유와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허리를 단단히 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 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답게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나의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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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6-15
-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9:2
바울은 끝임없이 사도직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 그것은 사도에 대한 조건에 바울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행전1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요한의 세례 때 부터 우리가운데 올라가신 때 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중에 한 사람을 뽑는 것이 기준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부활을 증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바울은 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스데반을 박해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직접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바울은 이야기 한다.
바울의 이러한 논쟁을 바라볼 때 마다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아니면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이다.
바울은 무엇보다 자신의 사도직에 대하여 자신이 세운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나의 사도된 것의 증거은 바로 당신들(성도들)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였고 지금도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도록 돕고있는 내가 당신들에게 사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는 반문인 것이다.
바울의 이 말은 백번 맞는 말이다. 예수님과 그의 부활하심을 소개하고 예수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것 또한 사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직분을 받았다면 그 직분에 합당한 사역을 감당해야 하고 그 사역은 교회와 성도들을 통하여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예수님과 그의 부활하심을 전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권면하거 있는가. 부족한 것 너무 많지만 나의 직분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잘 감당하게 되기를 예수님께 기도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