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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목)공평과 정의로 세우는 가정의 질서 (신21 : 15~23)
- seanho
- 2020-05-21
- 390 회
- 1 건
2020.05.21 (목)
공평과 정의로 세우는 가정의 질서
신명기 21 : 15~23
오늘의 찬송
(새 204 통 379 주의 말씀 듣고서)
보호받아야 할 장자권 21:15~17
15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패륜아의 사형과 매장 지침 21:18~23
18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22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본문해설
보호받아야 할 장자권 21:15~17
하나님이 세우신 공평과 정의의 질서는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보다 우선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장자의 권리는 큰 특권으로,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둘 다 아들을 낳은 경우,
남자가 더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을 편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애정과 상관없이 장자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그대로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롬8:29) 죄인에 불과했던 우리 또한 영적 장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영적 장자가 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붙들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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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권리는 어떤 아드리 누려야 하나요?
감정에 휩쓸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절제하며 주의할 일은 무엇인가요?
패륜아의 사형과 매장 지침 21:18~23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완고하고 패역하며 불순종하는 아들이 있다면 부모는 그를
재판이 열리는 성문으로 데려가 장로님들에 검길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들의 패륜적 행동을 호소하면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불순종을 공동체 전체의 안정을 해치는 죄악으로 간주해 응징하는 것입니다.
패역한 아들을 끝내 군중의 돌팔매에 넘겨야 했을 부모의 모습에서
패역한 죄인들을 대신해 독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셔야 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을죄를 지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을 경우 땅이 부정해지지 않도록
그날에 장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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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완악하고 패역하며 순종하지 않는 아들이 받는 벌은 무엇인가요?
나나 자녀의 불순종이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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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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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신21;18)을 둔 부모.
도저히 어떻게 할 방도가 없을 때
이스라엘 공동체 모든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도록 내어줄 수 있다고 한다.
완악하고 패역하여 말을 듣지 않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아들이라면.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나무에 달린 자’(신21;23)이다.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위에 달거든
...........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2-23)
죽을 죄를 범해서 죽여 나무 위에 달린자이다.
이렇게 ‘나무에 달린 자’(신21;23)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는 것을,
온 이스라엘이 다 알고 있었다.
2
그토록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여긴 ‘나무에 달린 자’,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완악하고 패역한 인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주신다.
완악하고 패역한 죄를 모두 몰아 그 아들에게 지우고서는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을 고발하는 부모처럼
십작 나무에 달린 자로 가장 저주받은 자로 만드셨다.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살리기 위해서.
3
패역한 나 대신에 나무에 달린 자로 기꺼이 십자가로 가신 예수님.
나 대신, 나를 위해서, 내 완악함과 패역을 다 짊어지시고
내 죄를 다 해결하셨다며
오히려 기뻐하셨던 마음의 울림이
‘다 이루었다’ 하셨던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하다.
4
이해할만도 하다.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에 달린자라고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분명 저주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저주가 나를 살린것이라고 말한다.
알기는 알았는데 바로 알지 못한 그들의 비극이다.
5
아무리 생각해도 은혜밖에는 설명할 말이 없다.
나 역시 사랑받지 못한 아들이었는데
저주받은 십자가 죽으심으로 장자권을 회복시켜 주심이 감사,
패역한 아들에거 회복된 아들로 살라고,
그리고 그 하늘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로 살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성경의 말씀을 이루는 삶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