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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진가가 드러나는 곳 - 잠언19;1-17
- 관리자
- 201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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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9장 1절-17절 말씀
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5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7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9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2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본문내용]
19장에서 주목해야 하는 교훈들은 삶의 여정에서 피할 것들로 분노, 게으름 거만 등이다.
11절은 “노하기를 더디하”라고 했고, 19절은 “노하는 자가 받는 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분노는 감정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쉽게 분노하는 자는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정,의라는 인격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인격을 형성하고 있는 다른 요소에 비하여 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판단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분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이 쉽지 않고
또한 쉽게 분노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절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함으로
지혜보다는 어리석음을 범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다음 묵상장인 19절은 분노의 위험을 이와 같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우리의 삶 가운데 정(情)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지만
지(知)와 의(意)로부터 통제를 받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내는 것이다.
분노란 지와 의의 통제에서 벗어나 정이 자율화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비정상적인 삶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멀리 해야 할 것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게으름이다.
왜냐하면 게으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들과 기회들을 잃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15절은 게으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이 말씀을 역으로 말한다면 부지런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각성(覺醒)케 하고
성실한 사람은 부요함을 누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잠언은 풍요로움은 부지런함으로 온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교훈해 주고 있다.
19절은 게으름이 어째서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허락해 주신 것들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지 말해 주고 있다.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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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재력, 지력, 권력 등이다.
그러므로 재물이 많다는 것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한다는 의미는
힘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의미다.
가난은 약함을 상징함으로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난은 발붙일 곳이 없다.
여기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떠난다는 의미다.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 있어야 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고아와 객과 과부와 많은 죄인, 약한자들과 함께 하셨다.
세상은 힘있고 능력있는 자들에게만 시선을 두지만
주님께서는 달랐다.
그 다름이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이유이다.
내가 먼저 마음으로도 삶으로도 나누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겠다.
나도 그렇게 살고
그런 나를 보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교회 되었으면 좋겠다.
19: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너그러운 사람” 또는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 청년 바보의사 란 책의 저자 고 안수현씨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일, 장소, 시간
누구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간 따듯했던 사람.
그 책을 읽으면서 책도, 음반도, 마음도, 사랑도
무언인가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느낀적이 있었다.
한때 그 마음 갖고 싶었는데
나눔이 생활화된다는게 참 쉽지 않다.
참 성경말씀이 살갑고 도전이 된다.
외로운가? 선물하라 그들이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전도할 사람이 없는가? 잘못살았다는 반성이 아니라
선물할 사람을 찾으라
그러면 그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뭐 그렇게 읽어도 의미있다 싶다.
나눔의 축복은 축복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와 친구들을
많이 얻는다는 것이라 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이다.
11절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것은
먼저는 노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자제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과 선택이 불안전한것이 사람이기에
감정의 표출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분노할 때 언제나 정당한 이유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인전하고
감정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의미에서 슬기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납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할수록
더욱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한 집사님이 주신 귀한 말슴이다.
나의 입술의 30초가
누군가의 가슴에 30년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말이 그렇지
잘못이 뻔하고 화가 이미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는데
참고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건 사람의 힘으로 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은혜'가 필요하다.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내 모양이 가시투성이다.
'은혜'를 현실감 있게 다시 말하면,
당장 죽어도 할 말 없는 흉악한 죄인인 내가.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마음에 믿는 나로 하여금.
원죄가 말끔히 해결되어진 사실을 현실감 있게 믿는 마음이다.
죽을 죄로 부터 용서받은 사람이
사실 용서하지 못할 다른 일이 있을 수 없다.
'분노시대'의 해법은
'하나님의 은혜'다.
아.. 여전히 어렵지만,
은혜를 부여안고 먼저 내 자신과 싸워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