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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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5(월) D6묵상, 하나님의 선택과 버리심, 롬9;19-21

  • 최고관리자
  •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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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도록 선택하셨지만 어떤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버리시기도 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인 자기 동족의 구원문제로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헛되지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아무리 예수를 대적하고 믿지 않아도 택함을 받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이었고 또한 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예수를 배척하고 있는 현실을 놓고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 결과 얻은 해답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버림을 받았습니다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이 그 예이다. 둘 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 난 정상적인 후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이삭을 택하셨습니다이삭의 아들 예서와 야곱도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인데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불쌍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받고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민족 단위로 선택하신 것은 그들에게 어떤 사명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명적 선택과 구원적 선택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맡기신 사명은 그들의 혈통을 통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로 오시는 그 중차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민족 단위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모든 사람의 영혼 구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는 사명을 위해서는 선택을 받았지만 그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도 자기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은혜가 따라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근거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가 택하시는 근거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행동에 사람은 의구심이나 공평과 사랑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마트에 가면 어떤 것은 택하고 어떤 것은 택하지 않습니다. 내 기쁜 뜻대로 무엇을 택하고 안하고의 결정은 오직 나에게 주어진 권한입니다. 그 물건이 왜 나를 택하지 않았냐고 할 수 없습니다. 물건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주권이든 나를 선택하는 것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20, 21). 

피조물은 창조자의 공의와 자유와 권리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처분에 따를 뿐이다. 창조자는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해 절대 자유, 절대 주권을 행사합니다. 하나님은 진노를 내리기로 작정하실 수도 있고, 긍휼을 내리기로 작정하실 수도 있습니다하나님의 놀라운 선택의 은혜를 생각하면 이방인인 우리로서는 입이 만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원래 우리는 이스라엘에 비해 사랑받지 못했고 버림받은 것처럼 보인 존재였습니다. 선민인 이스라엘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대 이변이 일어났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붙들고 고집하다가 예수를 거부하는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길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놀라운 복음 때문에 구원받았다.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이 선택교리는 불가사의한 진리입니다.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인간이 다 알겠다고 뛰어들면 결국 미로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여 스스로 망하는 길이 됩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만큼만 배우고 만족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나도 침묵하면 됩니다. 선택교리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닙니다. 토기는 자기를 만든 토기장인의 생각을 알 수 결코 알 수 없습니다하나님의 절대주권, 선택교리는 내가 하나님 앞에 무조건 복종하고 그 은혜를 찬양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로 주신 것입니다. 나 자신이 스스로 질그릇임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그렇다고 다 이해할 수 없으니 피해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진리를 논할 때 하나님이 성경에서 가르쳐 주신 것이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그대로 배워야 하고 또 말해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피하면 짐승과 깉은 무지로 만족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비밀로 두신 것은 탐색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이 공개하신 것은 버리지 말하야 합니다. 과도한 호기심은 피해야 하지만 은혜에 너무 무지하다는 말은 듣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적 호기심을 위해, 이성의 저울에 올려 놓고 하나님을 이리 저리 재거나, 구원에 관해서 못 받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아직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선택의 교리를 잘 이해하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놀랍다고 고백한다면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나 같은 자를 선택하셔서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하게 됩니다. 나를 자녀 삼으실 어떤 근거로 없는데 구원하심에 기가막힌 감사와 찬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좋아서 나를 택하셨다면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 좋아하심은 세상 끝날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변해도 하나님은 안 변하십니다. 이 은혜를 어찌 노래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것 이상으로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으로 만족하자. 은혜 앞에 내 마음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에서보다 선한 것이 없었지만 사랑받았던 야곱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감격하는 가슴을 안고 그분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