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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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4(목) 그분이 참으셨기에, 벧전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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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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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초대교회 성도들, 특히 종(노예) 신분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말씀입니다.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에 있었고, 믿음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와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부당한 고난을 참으시며 본을 보이셨음을 상기시키며, 성도들도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을 때 인내할 것을 권면합니다. 단순히 인간의 억압을 견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라는 영적인 권면입니다.
고난의 의미를 새롭게 보라 (2:18–20)
초대교회에는 많은 종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들은 여전히 불신 주인의 권위 아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선하고 관용하는 자”뿐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굴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이 아니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상사', '부당한 권력', '불공평한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때 우리는 억울함을 참고 견디기보다는, 쉽게 분노하고, 포기하거나 원망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참는 자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2:20). 이 말씀은 나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만 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의 본보기다 (2:21–23)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욕을 당하시되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억울함을 다 말씀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너희도 나처럼 참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시고, 직접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의 자취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침묵과 인내는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신뢰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그분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셨고, 하나님의 정의에 삶을 맡기셨습니다. "나는 억울한 상황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그것을 맡길 수 있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고난을 해석하는 열쇠다 (2:24–25)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대속’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의 고난을 새롭게 해석하는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를 고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끌어내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난은 더 이상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의 일부입니다. 고난은 단지 견뎌야 할 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승리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고난의 자리에 있는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내 억울함, 상처, 고통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맡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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