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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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5(금),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 요한계시록 1:10-18
- 최고관리자
-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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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고립된 밧모섬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합니다. 고난 속의 외로움, 그 침묵의 시간에 성령은 오히려 더 깊이 요한을 감동시키셨고, 그의 내면은 주님의 음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그러하지 않나요?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속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그때야말로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이 더 분명하게 들릴 수 있는 때입니다. 고난이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고, 말씀이 들리는 자리로 바뀌는 은혜. 주님은 바로 그런 시간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요한이 돌아봤을 때 보게 된 건,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 바로 교회 한가운데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때로 교회가 무너지고 흔들리는 것처럼 느낄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그 중심에 계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쩌면 지쳐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중심에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나는 지금, 주님의 임재를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그리스도의 외모는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고 두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더 이상 연약한 종의 모습이 아니라, 심판자요, 주권자요, 생명의 주님으로 임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나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여전히 “나를 위로해주는 착한 목자”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나는 그분의 전능하신 권세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나는 정말 살아 계신 주님의 영광 앞에서 떨림과 경외심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 보세요.
요한은 그분 앞에 엎드립니다. 죽은 자처럼 엎드렸다는 표현은, 주님의 영광 앞에서는 내 존재 자체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진짜 예배는 나를 무너뜨리고 주님을 높이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렇게 무너져 있는 요한에게 주님은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 주님의 손길은 책망이 아니라 회복의 손길이었습니다. 주님의 임재는 우리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 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무너져 있는 나에게도, 주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이어지는 선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열쇠는 무엇인가?" 안전함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통제하려 하는가, 아니면 죽음조차도 이기신 주님의 손에 그 열쇠를 맡기고 있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죽었으나, 지금은 살아 있다.”
이는 단지 부활의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계신 주님이 나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관계 속에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그 살아 계신 주님을 나는 인식하고 있는지, 아니면 죽은 지식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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