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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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2(월)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다, 눅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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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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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1–8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단순히 끈기 있게 기도하라는 차원을 넘어서 있습니다. 이 비유의 진짜 목적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의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억울한 과부의 호소를 번거롭게 여겨 마지못해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불의한 재판관과 하나님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조하기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how much more)라는 단어는 바로 이 차이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사랑으로 충만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과부는 아무런 관계도, 보호자도, 권리도 없는 외로운 존재였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낯선 재판관에게 억지로 매달리는 간청이 아니라, 사랑의 아버지께 드리는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시편 65:2)이시며, 그분의 귀는 자녀의 부르짖음에 민감하게 열려 있습니다. 응답이 더딜 때조차,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관계의 깊이를 더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지못해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쁨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비유는 기도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관처럼 오해하면, 기도는 두려움과 불신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비로운 아버지로 믿으면, 기도는 신뢰와 사랑의 교제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망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완전한 때에 우리의 기도를 가장 선한 길로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간청이 아니라 교제이며,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낙망하지 않고 신뢰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