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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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3(목), 복음의 나눔은 곧 돌봄입니다, 로마서 1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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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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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3(목), 복음의 나눔은 곧 돌봄입니다, 로마서 10;14–17

 

로마서 10:14-17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장은 복음의 보편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주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3절)라는 

놀라운 약속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이 단순히 하늘에서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순종을 통해 세상에 흘러간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라는 질문은 

복음의 전달 과정을 역으로 보여주는 논리적 연결입니다. 

누군가 복음을 전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으며, 

믿어야 주님을 부를 수 있고, 

주님을 부를 때 구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의 역사는 전하는 자의 순종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연쇄 작용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주체이시지만, 그 구원을 전하시는 통로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는 말씀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적 의지를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복음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17절)는 말씀은 

믿음이 인간의 결심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마음에 들어올 때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여시고, 

그 마음 안에 믿음을 심으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에게 종교를 설명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돌봄의 행위입니다. 

복음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삶 속에 하나님의 빛을 들여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단지 구원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구원을 흘려보내는 자로 사는 데 있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사람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그 발이 단순히 먼 길을 걷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을 전하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사랑이 세상으로 흘러가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복음을 들은 자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까? 

사실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들은 자는 반드시 전하게 되고, 

전하는 자는 다시 듣게 되는 순환 속에서 복음은 살아 움직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부담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신뢰하시고 보내신 증거입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따라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의 삶을 돌보는 일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복음의 나눔은 곧 돌봄이며, 돌봄은 곧 사랑의 실천입니다.

 

복음은 들릴 때 생명을 낳습니다. 

들리게 하는 일은 전하는 자의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면, 

이제 나도 누군가를 부를 차례입니다. 

복음의 나눔은 곧 돌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