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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월) 사람들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 마태복음 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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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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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7(월) 사람들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 마태복음 9;35-38

 

 

마태복음 9:35–38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역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중심에는 기적보다 더 깊은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실 때 가지셨던 ‘긍휼’의 눈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36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방식의 요약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외모나 배경,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겉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 곧 영혼의 피로와 방황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보실 때, 그분의 시선은 판단이 아니라 연민이었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분의 시선은 차가운 분석이 아니라 뜨거운 사랑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자주 다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고, 판단하고, 분류합니다. 

학력, 외모,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안의 기준으로 걸러집니다. 

문신이 있으면 불량하게 보이고, 

옷차림이 다르면 거리감을 느끼며, 

생각이 다르면 틀렸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시선은 예수님의 눈과는 너무도 다른 것입니다.

 

종종 문신이 가득한 사람을 보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너의 판단이 아니라 나의 긍휼이 필요하다.”

말씀은 한 사람의 시선을 바꾸십니다. 

사람을 ‘모양’으로 보던 눈이 ‘필요’로 보는 눈으로 바뀌게 하십니다. 

문신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볼때 갖게 되는 편견이나 잘못된 시선이 얼마나 많은지요?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교훈이 아니라 목자가 필요했고, 책망이 아니라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그들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3738절)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뀌면, 우리의 기도의 방향도 바뀝니다.

판단의 눈을 가진 사람은 남을 바꾸려 하지만, 긍휼의 눈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무릎 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피로한 사람들을 보며 ‘비판’이 아니라 ‘추수의 비전’을 품으셨습니다.

그분의 시선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명으로 이어지는 눈이었습니다.

 

오늘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그들의 부족함을 보는가, 아니면 그 속에 숨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가?

그들의 실수를 보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신 흔적을 보는가?

 

예수님처럼 사람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닫혀 있지 않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우리의 일상은 곧 선교의 현장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눈의 복음입니다.